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나니,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 하리다.
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천성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윌리엄 워즈워드의 ‘무지개’>
아무리 고개를 저어도 어른임이 부끄러운 나날,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구가 가슴을 후벼 파는 때 맞이하는 ‘어린이날’입니다. 입이 있어서 아이들 앞에서 열 수가 없군요. 소파 방정환이 지은 ‘어린이 찬미’의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편지를 갈음합니다.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볕 좋은 봄날 조용한 오후이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를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스럽다.…(중략)…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다 슬픈 빛을 지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기쁨을 상해 주어서는 못쓴다. 그리 할 권리도 없고 그리 할 자격도 없건마는…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많이 어린이들의 얼굴에 슬픈 빛을 지어 주었느냐.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중략)…
어린이는 복되다. 어린이는 복되다. 한이 없는 복을 가진 어린이를 찬미하는 동시에 나는 어린이 나라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