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라는 기계에 잘 정제된 예의라는 기름을 바르는 것이 현명하다.
--콜레트--
콜레트(1873~1954) 프랑스.작가.
20세기 전반 ,프랑스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여성작가.
그녀의 소설들은 대부분 사랑의 기쁨과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로, 소리,냄새,맛,감촉,색깔 등의 감각을 생생히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다.
부르고뉴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친절하고 현명한 어머니 덕분에 ,'싹 트고 꽃 피고,날아다니는' 모든 것에 대한 경이로움에 눈을 떴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소양을 갖춰갔다.
순진함과 명민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사랑과 자연에 대한 글을 써서 반세기에 걸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러 차례 스캔들에 휘말렸지만,벨기에 왕립 아카데미와 프랑스 공쿠르 아카데미의 일원이 됐고,
여성에게는 거의 수여되지 않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방황하는 여인', '뮤직 홀의 이면' 등의 저서를 남기고 있다.(브리태니커)
나이가 들어가면서,그리고 혼자가 되고나서 더욱 우정에 목말라하게 된다.
가식적이지 않고,계산적이지 않을 수 있는 순수한 우정.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시피한 요즘 세상에서 그런 우정을 찾기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10년 이상 30여 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나누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태도를 바꾸곤 하는 데 당황을 한다.
나에게도 그 책임이 없진 않겠으나 ,한 번 사람을 믿으면 간이고 내장이고 다 내줘버릇하는 나로선
그들을 이용하려거나 ,그들의 처지가 바뀐다고 해서,그리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해서 태도를 바꿔오지 않았는데,
나의 치부까지도 스스럼없이 드러내 보이던 관계에서 갑자기 어색해지는 관계가 되고 나면 속이 많이 상한다.
그런 나의 치부를 빌미로 나를 공격하기까지 하는 걸 보면 분노까지 하게 되지만 누굴 탓하랴.
사람을 사귀는 게 조심스러워지고,만남을 유지하면서도 진솔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 인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내성적인 아이이기만 했던 초,중,고등 학창시절 각각 한두 명쯤의 친구들과 각별했었는데,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저마다 처하는 환경이 달라지고 몸이 멀어지다보니 소원해지고,
차에 ,가게에,몸에 '친일 매국노를 척결하자'는 액세서리(?)를 치장하고 사는 걸 보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들도 안색이 바뀐다.
어느새 녀석들도 세상에 엮이고 엮여 이런 내 모습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친일 매국노들과 얽히지 않은 곳이 없다보니 대기업이나 연구소쯤에서 녹을 받아먹고 사는 입장인 녀석들을 이해하고 만다.
순수함과 고상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본주의의 부속물이 될 수 밖에 없도록 내몬 세상을 원망하고 말아야지...
그들도 이미 기득권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알량함마저도 잃고 싶지 않은 가장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는 '새꺄~그런 거 하면 빨갱이얏!'하는 친구도 있었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젠 저녁무렵에 세월호 참사로 보낸 아이들에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촛불시위에 참가했다.
천안시내의 가장 번화한 곳 중의 하나인 야우리 광장에 털푸덕 주저 앉아서
동영상이나 몇몇 연사들의 강연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더러 구호도 외치고 눈물도 훔쳐가면서 시간을 공유하고,
촛불을 들고 30분 정도 행진을 했다.
주최자의 선창에 답하듯 '아이들을 살려내라!대통령은 책임져라,박근헤는 책임져라,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며 ...
그러다 지쳤는지 선창이 그치고 밋밋한 행진이 진행되는데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아이들을 살려내랏!'...
작은 피켓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흔들며 목이 터져라고 내가 행렬 한가운데서 쩌렁쩌렁 선창을 하고 있다.
목소리가 큰 내가 참 좋아졌다.
후창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선창하고 있다.'대통령이 책임져랏!' 악을 쓴다.
오랜만의 외침이라 목이 아파왔지만,그칠 수가 없었다.
계속하라는 재촉도 있었고,,그리 따라주는 친구(?)들이 고마워서...
그들 중엔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와준 부부도 있었고,노인들도 더러 보인다.
흐느끼듯 따라해주는 그들이 고마워서 원없이 선창을 해줬다.
그렇게 공감을 해가면서 그들에게서 우정을 느끼기 시작했고,그래서 그들을 친구라고까지 칭하게 된 것이다.
잠을 자고 난 지금도 목이 아프고 쉬어있지만 불편하단 생각보단 빚을 조금은 갚은 것 같은 뿌듯함이 생긴다.
거기서도 어김없이 행인이 빨갱이란 말을 하고,
어떤 애들은 '저런 새끼들이 종북이야!'하며 들으라는 듯 친구와 뇌까리는 걸 보곤 절망도 했지만,
수백 명의 친구를 얻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무시할 수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새끼들을 붙들어두고 개망신을 시켰을텐데...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순수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의 우정.
스스럼이 없어서 좋긴 하지만 ,얼마간의 예의라는 기름을 발라주며 더욱 현명하게 만나갈 수 있는 친구와의 우정.
그런 우정을 바라기엔 세상이 너무 혼탁해진 것일까?
순수한 척이 아니고 고상한 척이 아닌 ,진솔하고 진심어린 순수한 만남들이 도처에서 이뤄지길 바라본다.
http://blog.daum.net/migaein1
제 친구들에게 전 어떠한 모습의 친구였는지...
자문해 보는 시간 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