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30년 만에 다시 쓰는 추억의 일기
"작열하는 태양아래에서 오늘도 회사를 위해 애쓰시는 직원 여러분! 지친업무에서 벗어나 멋진 바다로의 여름여행 한 번 안해 보실래요? ............................. - 파도가 그리운 여자 -”
창구에서 분주하게 손님을 응대하고 잠시 틈이 나는 시간 고참직원이 짧게 쓴 문서가 회람되고 있었다. 피서 겸 야유회를 갖자는 내용의 글이었다.
업무에 짓눌리고 더위에 지치고 바다의 갈증을 심하게 느끼던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폭적인 지지로 응답했고 하계 야유회가 이루어졌다.
1984년 한여름 직장생활 2년차 이었지만 직원서열 30명중 23위의 여전히 신참내기 일 때였다. 나는 그 때 입사동기 중의 한 여사원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얄밉게도 상사인 멋쟁이 모대리를 좋아하고 있었다. 대답없는 메아리에 마음을 접고 있으면 다시 친숙하게 다가오고 가까이 다가가면 뒷걸음치고를 반복했다.
연인도 타인도 아닌 모호한 관계에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일방적으로 절교(?)를 통보했다. 참으로 가슴이 허전했다. 처음으로 인생이 덧없이 느껴졌다. 그래도 유일한 여자친구였는데... “한잔 술에 떠오르면 두잔 술에 잊어주리라.”중얼거리며 술도 마셨다.
그 후, 며칠이 지났을까? 전직원 회식이 있었다. 큰 중국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술도 곁들였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홀에는 마이크가 있었고 작은 무대도 있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직원들은 하나 둘씩 사회자에 의해 노래를 부르고 개인기를 과시하며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한 곡 불렀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박수와 함께 앙코르가 터져 나왔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여유를 부리며 노래는 밴드가 준비되면 몇 곡 더 부르겠으니, 대신 한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존경하는 선배여러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해봐.”“말해봐?” “예, 그러니까 제가... 청초한 목련과 같은 배은혜(가명)양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배은혜양은 그다지 저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각골난망 하겠습니다.” 라고 하자, 와! 와!, 김oo! 김oo! 하고 이름을 부르는가 하면, 그래그래 내가 나중에 주례 서 줄게, 내가 아는 예식장에서 무료로 해 줄게, 그 외에 영화티켓을 즉석에서 주는 선배 등등... 너무나 의외의 결과에 다시한 번 놀랐다.
사실, 말단이나 다름없는 사원이 당시만해도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는 건, 황당무계한 폭탄선언이었다. 자칫하면, “건방지다, 무례하다.”소릴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놀란 건 상사 모대리 때문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도 창피하다고 울음 반, 알 수 없는 웃음 반 여전히 모호한 태도였다. 그녀가 모대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건 나와 그녀 선배여직원 모대리뿐 이었다. 나는 모대리로 인해 안절부절 하였으나 “설마, 정해진 연인이 있는데...” 하며 스스로 위로를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야유회를 가게 된 것이다. 행선지는 아쉽게도 바다가 아닌 ‘무주구천동 계곡’으로 정해졌고, 휴일 이른 아침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전에서 무주까지 2시간동안 관광버스 안에서의 풍경 또한 가히
볼만했다. 음주가무에 가져간 술을 벌써 반도 넘게 마셨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블루스를 춘 것 만으로는 갈증이 해소가 안 되었던지 고참직원 하나가 즉석 스트립쇼에 가까운 쇼를 시작했다.
나는 중국음식점에서의 회식이후 많은 직원들의 성원에 힘입어 그녀와 더 가깝게 되었고, 그 날도 선배여직원의 배려로 그녀와 같은자리를 앉게 되었다. 그래서 품위를 지키느라 조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기리에 스트립쇼를 마친 직원이 아직도 갈증이 덜 해소 되었는지 나와 그녀를 비좁은 무대에 불러 들였다. 그리고는 어려운 주문들이 쏟아졌다. 마치 결혼식 날 신혼부부에게 주문 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진도가 느린 친구일 뿐 연인 사이도 아니었기에 그녀가 순순히 응할 리 없었다. 나도 내성적인 데다가 이성과의 교제도 서툴기만 했고 춤도 몸치에 가까웠으니 고참직원의 맘에 들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김oo씨, 그래가지고 두 식구 먹고 살겠나?”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잘 보라고..” 하면서
능숙한 솜씨로 뽐내는게 아닌가. 아! 정말 속이 상했고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았다.
처음으로 조상 탓을 했다. 그런데 난 그보다 더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온 마음이 쏠렸다. 다행히 그녀가 따라주는 한 잔의 술에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이윽고 목적지인 무주 구천동에 도착했다. 여름피서지의 명소답게 전국에서 몰려든 피서객들과 어우려져 우리는 물이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버너 코펠에 쌀과 반찬거리 등을 꺼내서 계곡물로 밥도 짓고 찌개도 만드는 동안 얕은 물 속에서 한 직원의 제의로 내기를 했다. “물 속에 5분동안 발을 담그고 있으면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많은 직원이 도전을 했으나 3분 정도도 못 버텼다. 한여름인데도 그 만큼 계곡물이 차가웠다.
점심 겸 술자리가 열렸다. 지점장께서는 대단한 애주가이셨는데 30명이나 되는 직원들을 한 사람씩 불러, 주고받고 30잔을 드셨다.
술에 약한 나는 두어 잔에 말이 많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당연히 그녀를 찾았고 그녀는 깊은 물가 난간에 서서 무엇인가 사색을 하고 있었다.
순간 “옳지, 뒤에가서 안아버리면 앞으로 피할 수도 없고 꼼짝
못할 거야.” 혼자의 술책으로 흐뭇해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녀는 전혀 눈치를 못채고 있었다.
드디어 뒤에서 와락 껴안는 순간, 엄마야! 비명소리와 함께 그녀가 깊은 물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 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참으로 난감했다. 다행히 그녀는 깊지 않은 물 속에서 헤엄쳐 나와 정신없이 바위로 올라갔는데, 맙소사!
한여름 복장이 다 그렇듯이 그녀의 복장도 얇은 흰색의 간편한
차림이었고, 수중발레하는 사람처럼 물 속에서 바위에 올라온 그녀는
흰 색 얇은 옷이 몸에 찰싹 붙어, 마치 투명한 수영복을 입은 것처럼 보여 아름다운 곡선이 다 드러나고 만 것이다. 정말 삽시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두 번째 쥐구멍을 찾았다.
선배 여직원들의 도움으로 사태는 비교적 조기 수습되었다. 나는 벌주로 두어 잔의 술을 더 마셨으나 취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알콜의 힘을 빌려 솔직히 사과했다. “한 번 안아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난처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뜻 밖이었다. “괜찮아, 싫어서 그런게 아니고 순간 놀라서 그런거야 덕분에 시원했어”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녀와 이성으로서 첫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짝사랑과 풋사랑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첫사랑이었다. 어쨌든 예기치 않았던 그 일로 어색할 것 같았던 분위기는 생각과는 반대로 더 무르익었고 무주 구천동에서의 하계야유회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장생활 2년차 미숙했던 그 때 천방치축, 좌충우돌 식의 용기였지만 그 용기가 첫사랑을 안겨다 준 셈이 되었다.
아! 지금은 갈색추억이 되어버린 나의 첫사랑... 그녀도 나와 같은하늘 아래에서 호흡하고 있겠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행복할까? 첫사랑 배은혜, 꿈속에서라도... 한 번 보고 싶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애틋합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후회와, 더욱 만남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그때는 사랑에 대해 너무나 몰랐습니다. 그러나 서툴렀기 때문에 첫사랑이 아름다운 지도 모릅니다. 능숙하진 않았지만 순수했고 많은 것을 선사하지 못했지만 마음을 모두 주었습니다.
첫사랑은 평생을 두고 기억할 아름다운 추억을 제게 주었지요. 다시는 그토록 순수하고 애절하던 시간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첫사랑... 단 한번 뿐이라 더욱 아름운 것이겠지요...
흐르는 곡 : 우순실 “잃어버린 우산”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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