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자들의 우화,첫 구절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김 선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에 새겨져 있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은 소크라테스의 것으로 알려진 격언이지만,
원조에 관해서는 헤라클레이토스나 피타고라스 등이라는 이론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누구의 것이면 어떤가?
내가 취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도 그런 걸 원할테니...새기고 또 새겨볼 일이다.
장기나 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도 훈수를 두는 덴 천재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도 막상 자신이 임하면 못하는 경우가 많다지 않던가?
남에게 충고를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스스로를 알아서 자신을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다.
자신을 알기 위해선 스스로와의 대화가 필요하고,거기엔 진솔함이 전제돼야 하는데,
자신과의 대화 시도조차 하지 않고,하더라도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불안해지기까지 한다.
자신과의 대화의 대표적인 방법인 일기를 쓰면서도 누군가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솔직하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해보지 않았는지?
숙제로 마지못해 하기 시작한 '일기 쓰기'는 ,어른들의 가장 잘못된 자녀교육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내기 기억하기론 일기는 써야한다는 강요만 받았을 뿐,왜 써야 하는지를 친절히 알려주고 ,동기부여를 해 주는 사람은 드물기만 한 것 같다.
난 중학교 졸업 선물로 ,구세주처럼 현현하신(?) 젊은 새어머니로부터 두터운 일기장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한꺼번에 몰아서 엉터리 그림일기를 써본 게 고작이었던 나로선, 기쁘긴 했으나 막막했던 그것을 들고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일기장이라고 쓰여진 것도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일기장이라고 주신 것이었기 때문에 ,일기장 아닌 다른 용도로 써선 안 될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단 한 줄이라도 써서 어머니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쓸 거라곤 없는데,뭘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하며 ,고문에 가깝게 매일 밤을 시달렸던 것 같다.
어제처럼 먹고 학교 갔다와서 놀다가 밥먹고 자고...
그러다 차츰 낙서장처럼 끄적거리게 됐고,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쁘기 시작했고,점점점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성적이기만 했던 나로선 일기를 쓰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돼가기 시작했다.
'객관적인 나'와 '주관적인 나'가 진실게임을 하는 식으로 거짓이나 가식과 벽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마침 펜팔을 하기 시작했는데,편지를 곧잘 쓴다는 말을 친구들로부터 들으며 더욱 용기백배해서 일기를 쓰게 됐던 것 같다.
사회에 나와서 정신적 지주 내지는 소울 메이트였던 친구로부턴 '넌 고하듯 편지를 써서 참 좋다!'는 말을 들으며 얼마나 기뻤던지...
중간중간 정신 사나운 위기를 겪을 때면 까맣게 잊은 적도 있었지만,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돈독이 올랐을 때도 거의 안 하던 일이었지만,
다시 혼자가 돼서 딸과의 소통을 모색하던 중 ,본 카테고리를 이용해 '밤의 나'와 나의 DNA를 본의 아니게 물려받은 딸들이 대화를 나누듯 쓰게 됐으니...
유명한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지혜를 붙들고 나는 과연 거기에 맞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일기를 공개한다는 우스꽝스런 몰골이긴 하지만,그러면서 나의 추한 면까지도 마구 공개되는 일이 벌어지게 됐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반성을 하고 다짐을 함으로써 더욱 행동거지에 조심하게 되는 면도 있어서 나로선 실보다 득이 큰 작업인 것이다.
딸들이 이 글을 보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안 봐도 상관없다.
나의 일기일 뿐이니...
또 다른 자기 알기 작업의 하나로 명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면벽좌선을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기를 모으는 식의 멋있는 방식이 아니어도 ,우리들의 삶의 한가운데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것은,
하루종일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이다.
안성의 ' 웃는 돌'인가에 둥지를 틀고 앉은 홍 신자인가 하는 세계적 무용가로부터 '경작 명상'인가 하는 명상법을 듣곤(말이 애매한 건 딱 한 번 가봤을 뿐이어서이다.)
명상에 형식적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깨닫곤 틈틈이 명상을 하게 됐으니...
청소 명상,운동 명상,경작 명상,멍때리기 명상 등 나름대로 명상법을 개발해가며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하고 있다.
머리를 하얗게 비우고,가능한 한 세속잡사에서 벗어나 진솔한 본연의 자신과 마주하며 자신이 하는 소리를 듣는 식이라면 뭐든 좋다고 본다.
'미개인아,네가 이 정도밖엔 안 되니?','미개인아,네가 요즘 하는 짓이 부끄럽지도 않니?'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하니?'...
'네가 이 쓰레기와 다를 게 뭐가 있지?', '네가 뽑고 있는 이 잡초같다곤 생각지 않니?' ,'가식을 증오한다면서 넌 과연 진솔하기만 한 삶을 살고 있니?'...
문득문득 잘난 척 하고 싶고,증오하고 싶어질 때면 잠시 숨을 고르고 순간적으로 하는 명상을 하기도 한다.
사고를 하는 시간을 명상으로 대신하려 애를 쓰면서 살고 있다.
나를 알기 위한 이 노력과 ,그때마다 느끼고 알게 되는 바를 실천하는 데 여생을 바치고 싶은 욕심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