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불멸의 이순신"을 집필한 방송작가 윤영수님이 멀리 부산까지 초청받아 "불패의 리더 이순신 -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라는 주제로 90분간 강연을 하였다.
얼마전 영화 "명량"이 최단, 최대 관람수 기록을 경신한 뒤여서 강연이 무미건조할 법 하였지만, 특유의 입담과 유머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저 개인적으로는 임진년생(1952년)이어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과는 360년(6갑자) 이전의 전쟁이었지만, 고향 거제 옥포에서 초등부터 "충무공 이순신 옥포해전 기념공원"에서 매년 진행된 백일장에도 참가하고 또래 녀석들은 사생대회에도 참가하기도 하였었다
지금은 그 공원이 대우해양조선 메인 토크장으로 변모되고 대체 장소로 거제시 덕포마을의 남서방향 산자락에 아담하게 잘 지어져 있다.
윤교수의 강연에 따르면 이곳 "부산해전"은 임진년 9월1일, 조선측 80척 대 왜선500척의 전투였다고 한다. 장군이 전라좌수사 시절엔 부산과 거제 지역은 다소 생소했을 터인데, 불철주야 현지 답사를 잘 한 탓에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고 본다.
남해안 특히 한려수도를 여행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과거에는 부산항에서 "엔젤호"라는 여객선이 출항하면 가덕도를 돌아서 거제 성포항에 1차 들러서 견내량을 지나 통영 - 사량도 - 여수로 운항하였었다.
이곳 지형을 자세히 보면 지금의 거가대교가 있는 곳은 작은 섬들이 엇박자로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막힌 것처럼 보이고 가덕도에서 거제도 옥포만 쪽으로는 상당히 넓어보여서 수로가 확튀인 곳으로 오판하기 쉬운 지형인데 장군이 이런 지형을 잘 활용하여
아군을 현 거가대교쪽으로 배치하면서 적선을 거제 옥포만쪽을 몰아넣어 대파한 것이 "옥포해전"이면 그 승전을 기념하고자 매년 거제시에서는 기념제를 성대히 치뤄오고 있다.
장군께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실 때 거제도에 주둔했던 "원균"장군이 칠천도 앞바다에서 대패한 것은(칠천량해전) 후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칠천도에도 연륙교가 설치되어 관광차량이 진입할 수 있어 매년 봄에는 어촌계에서 유료 조개채취 이벤트도 한다.
강연을 듣는 도중에도 문득 안님생각이 떠올랐다. 이순신장군처럼 부당한 압력과 청탁과 모함과 시기와 질투와 비난을 극복하고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알의 밀알로 썩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국정감사와 의정활동을 펼쳐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교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