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잃는다면,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인생이 외롭고 비참하게 된다.
--카를 힐티--
카를 힐티(1833~1909) 스위스.사상가.법률가.
베르덴베르크에서 출생하여 독일의 괴팅겐,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855년 고향인 쿨로 돌아가 18년 간 변호사로 활동했고,1873년부터 베를린 대학에서 헌법과 국제법을 강의했으며,1902년 이후 육군재판장이 됐다.
1909년에는 국제법 권위자로서 헤이그 국제사법 재판소의 스위스 위원으로 임명됐다.
정치적 저서로 '민주정치의 이론가와 이상가' 등이 있으나,종교적.윤리적 저작인 '행복론',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등이 특히 유명하다.(위키백과)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며 사는 것은 나라에 세금을 많이 내고 국가경제를 살찌우기 위해서 라고 말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마찬가지로 내가 따뜻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단지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내가 즐겁고 행복하고 뿌듯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하는 건 아닐까?
나 자신이 전 우주현상의 중심에 있고,모든 일의 근간엔 '나'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는 것이다.
나쁜 일을 하는 것도 내 마음에 욕심이 있고 질투가 있어서 하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도 스스로 보다 가치있는 존재이고 싶어서 하는 것일 게다.
나의 경우엔 그렇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뭐라도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이다.
방탕하고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스스로 떳떳하고 싶어서이고,딸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은 고통스럽고 불편하기만 한데도 무조건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신이 아닌 이상 그것은 신을 가장 닮았다는 부모들조차도 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나 따스한 가슴으로 살아 본 적도 있을 것이고 ,냉랭한 가슴으로 살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남에게 친절하고 ,배려하고,나누며 살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지?
친절하게 행동한 이상으로 사람들로부터 친절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고,배려한 이상으로 배려를 받았으며,나눈 것 이상의 크나큰 기쁨을 얻게 되지 않던가?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오히려 더 큰 기쁨과 깨달음을 얻고 오게 돼서 중독되게 되더라는 나눔천사들의 인터뷰를 가끔 본다.
가슴이 냉랭해지고 마음이 차가워지면 ,사람들의 친절이나 배려까지도 귀찮아지며 스스로 외로워지고 쓸쓸해지지 않았는지?
고로, 훈훈한 인정을 베풀려면 생기는 손해를 보는 듯한 마음은 사실 욕심으로 빚어지는 오해라는 것이다.
베풀면 베푼 이상 나의 가슴이,영혼이 훈훈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걸 일단 느껴 보자.
요즘 번화한 곳에 가면 어김없이 종을 치며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구세군 냄비를 만날 수 있다.
푼돈이라도 넣지 않으면 마음이 많이 불편하지 않은지?
그러나 푼돈이라도 넣고 "감사합니다"하는 인사를 받으면 얼마간 안도를 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잘 했어.그 돈 없어도 살 수 있겠지?다른 사람처럼 많이 기부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어?다독여주고 싶지 않던지?
그러나 한 잔에 몇천 원씩 하는 커피를 사 마시는 돈은 아까워 하지 않으면서 동전 몇 닢이라도 넣는 건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깟 걸로 적선을 한답시고 인사를 받고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것이 어딘지 어색해서 안 하고 나면 스스로 부끄러워지지 않던지?
일단 주머니 속의 동전이라도 넣어 보지 않으려나?
카를 힐티의 저 말이 뜻하는 바를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즐겁기 위해서 기부를 하고,돕고,나누고 ,친절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자 기쁠 뿐 아니라 행복해지기까지 한다는 걸 경험하고 산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지만,그리고 어디서 돈을 주고 행복이란 상품을 살 수는 없지만,
너그럽고 따스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크나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너그러울수록,뜨거울수록 그 행복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 맛을 알고 나면 아주 바람직한 중독자가 된다.
최근들어 자원봉사 시간을 점수화 해서 아이들에게 자원봉사는 강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육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1인이다.
그런 제도를 만든 당사자들은 과연 자원봉사를 하며 살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자신들은 점수가 필요없기 때문에 굳이 따로 시간을 내서 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점수화 함으로써 공공기관 등에서 마지못해 빈둥거리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그런 아이들 중 대부분은 학교만 졸업하고 나면 절대 안 하게 되지 않을까?
조금 더 치밀하게 연구해서 나누는 즐거움을 ,봉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어른들 스스로 본보기를 보이는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무슨 규격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교육 시스템을 획일화 하는 것은 외롭고 쓸쓸하고 비참한 인생을 양산하게 된다는 것을 전문가들이 몰라서 이러는 걸까?
하나서부터 열까지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탁상행정으로 이뤄지며 사회적 시스템과 민중들의 삶이 겉도는 것은 아닐런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