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존 러스킨--
존 러스킨(1819~1900) 영국.사회비평가.작가.
화려한 예술 비평가의 길과 험난한 사회사상가의 길을 차례로 걸었던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지식인이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위험할 정도로 조숙하고 정서가 불안한 천재성을 지닌 것을 알아차리고 사회현실에 접하지 못하도록 감싸고 돌았다.
런던에서 포도주 장사로 성공을 거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식구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다가 ,
알프스에서 그의 상상력이 갈구했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발견하고,초보적인 지질 조사와 식물 채집으로 알프스에 대한 사랑을 다져나갔다.
17세 되던 해 아버지와 동업하던 스페인인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가 상처를 입게 되면서 정서적으로 영원히 성숙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한 번의 결혼 생활을 했지만 한 번의 육체관계도 없이 헤어졌고,히스테리 증상이 있던 아일랜드 소녀와의 사랑도 그녀의 죽음으로 슬프게 마감하였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옥스퍼드 대학으로 가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터너의 그림을 변호하려고 한 것이 동기가 되어 ,'근대 화가론'을 완성함으로써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관심을, 예술을 비롯하여 문학,자연과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로 넓혀갔고,작가와 화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뛰어난 재능으로 당대 예술평단의 1인자로 명성을 떨치던 중 ,어두운 사회경제적 모순을 목도하고 불혹의 나이에 사회사상가로 변모한다.
점차 사회 비평에 눈을 돌려 인간 정신의 개조에 의한 사회 개량을 주장하고 ,미술 방면에서 거의 최고의 권위를 누렸으며,경제,도덕 방면에서도 존경을 받았다.
후일 간디,톨스토이,버나드 쇼 등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사회개혁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추종자로서 풍경화 속에서 발견한 자연에 대해 진실해야 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미학적 원리를 세웠고,
훌륭한 예술은 자연의 진실을 담고 캐는 것이라는 생각으로,이상적 장인은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일함으로써 성취감을 찾는 헌신적 인간이란 견해에 도달했다.
성서,아버지와 함께 탐독한 18세기 고전,아버지의 격려 등이 그에겐 가장 값진 교육이 됐고,
1869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첫번째 슬레이드 예술석좌 교수로 선출됐고,교수로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위키백과,브리태니커)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순수한 사람이었던 러스킨은 내적 어려움을 갖고 고독하게 살았으며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다양한 예술적 관심을 통해 '사회정의'란 모든 사람이 장인정신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펼치다 간 위대한 예술혼으로 기억되는 사람인데
그를 살피면서,참 나의 삶이 옹졸하고,비겁하고, 답답한 것이었음을 반성하는 계기를 갖게 됐다.
뛰어난 재능과 유복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그려낸 그의 삶은 명품 자체가 아닌가 생각하게도 된다.
한 번도 이뤄본 기억은 없지만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간직한 채 ,모순된 세상과 부딪히면서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으리란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인생을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며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고작 요리조리 잘도 피하면서 살아온 것을, 잘 살아온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부끄럽기 그지없는 삶이었음을 ,
러스킨 만이 아니라 천재들의 삶을 짚어 볼 때마다 느꼈음에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다가 러스킨의 삶의 모습을 접하면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 것이다.
천재인 그들의 삶은 이미 채워진 삶을 누리려는 데 있지 않았고,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쥐어짜는 고통스러운 것으로 일관되고 있는데,
둔재 중의 둔재인 나는,그리고 역시 고만고만한 둔재들이 알량한 기득권을 포장하고 누리려는 데만 몰두하고 있으니...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 돼서 가치관의 혼돈의 늪을 헤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야트막한 시인,작가,예술가,사업가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눈을 어지럽히고 있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지성인이네 정치인이네 하는 사기꾼들이 언론이란 장난감을 교묘히 조작하며 세상을 퇴락시키지 못해서 안달이다.
가치있는 삶을 살려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헌신적인 삶을 사는 러스킨적 장인정신은 어디서도 찾기가 힘들어졌다.
어떻게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찾아내서 그들보단 잘 살고 있다는 비교우위를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로만 그득하다.
자신의 잘못을,남들도 다 저지르는 잘못인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며 발악을 하는 것으로 덮어버리려는 억지가 있을 뿐,
반성도,자아성찰도,자아추구도 하나같이 사어화(死語化)되고 있는 현실이니 ...다윈의 진화론은 오래 전에 끝난, 유효기간이 다 된 학설이 아닐까 ?
최근 내가 주목하게 된 멋쟁이라고 생각한 안 철수나 김 진애 같은 사람도 결국은 그런 아류가 아닐까 하는 실망을 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부터 읽고 있는 김 진애의 최근작에서 ,빈 칸을 채워가는 모습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덧칠을 하는 정도의 약삭빠름을 발견하며 슬슬 짜증이 돋고 있다.
확 집어던지고 싶은데,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된똥을 싸듯 억지로 페이지를 넘겨가곤 있지만 기대난이다
감히 영웅이라고 칭하며 따르고 싶어는 하고 있지만 ,너무 겁쟁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영웅이 아닌 여우라고 부르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과연 가시밭길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든 사람이 맞는지,상처뿐인 영광으로 만족할 자세로 뛰어든 사람이 맞는지,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버리고 죽을 각오로 이상을 펼쳐 보이려는 사람이 맞나 싶어질 때가 있기에 문득문득 힘이 쪼옥 빠질 때가 있다.
그 역시 텅빈 곳을 채울 새 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적당히 덧칠을 하고,내것이라고 ,나만의 것이라고 억지를 부릴 것만 같아 불안하다.
진정 천재의 시대는,장인의 시대는 끝나고 만 것일까?
그러나,미개인 넌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너나 잘 해라!
그렇다,나나 잘 해야지...
흠~오늘은 하루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뭔가로 채워가야 할텐데...
그 뭔가를 찾아 부지런히 헤매 볼까나?열심히 허우적 대 보자!
시간이나 흘려보내면서 살아지는대로 사는 것은 진정한 인생이 아님을 ,
적극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인생임을 가르치는 저 말을 명심하고 빈 칸을 채워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잘 살아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