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보다 더 어려운 예술은 없다.다른 예술이나 학문은 가는 곳마다 스승이 있다. --세네카--
세네카(BC 4~ AD 65 ) 로마.철학자. 정치가.연설가.비극작가.
스페인 코르도바의 부유한 집안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큰어머니를 따라 로마로 가서 연설가 훈련을 받았고,
스토아주의와 금욕주의적 신피타고라스주의를 혼합한 섹스티의 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네로 황제 재위 초기인 54~62년에 로마의 실질적 통치자로 활동한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연설가였다.
'신성한 클라우디우스의 바보만들기'라는, 빈정거리고 무엄한 정치적 풍자를 쓴 비극작가로도 기억되고 있다..
2065년에 맞을 그의 죽음 2천 년을 기념하여 학문적 연구와 관심이 이뤄지며 그의 사상적 부활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브리태니커)
인생에 있어서도 스승이 없다 할 수는 없겠으나 ,예술이나 학문처럼 배운대로 하지 않고 다 나름대로 살아간다는 특징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성공한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배움을 받으려는 사람들 사이의 멘토링이 유행인 듯 확산되고 있지만,
새로 생긴 현상은 아니고 예로부터 있어왔던 암암리의 전통이 형체를 갖춰 명칭을 갖고 드러나고 있을 뿐이라고 봐도 되겠다.
스승으로부터 ,어른들로부터,부모로부터 삶의 ,성공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받는 관계는 인류 이래 계속돼 오고 있으면서도 ,
새로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멘토들이 해온 실수 등을 거듭 반복하게 된다.
가령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처럼 고생을 한단다.그러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하렴!'이라고 가르치면
'네에~'하고 고분고분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당신이라고 다 해 본 방황을 왜 나더러만 하지 말라느냐며 기어코 방황도 하고 실수도 하고 만다.
그런 식의 가르침은 격언이나 속담,명언 등의 형태로 ,그리고 위인전 등의 형식으로 만인에게 공개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걸 스승이라고 생각하기보단 그저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장난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걸까?
세상이 변했다면서 들은 척도 안 하거나 고리타분한 꼰대쯤으로 취급을 하고 말아 버리고 기어이 실수를 하고 만다.
그리고 정말 귀를 기울여 듣고,곱씹어 보며 좌우명으로까지 삼더라도 ,직접 체험을 해보기 전엔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나의 경우 낙이불음(樂而不淫)이란 공자님의 연애철학을 살짝 전용해서 행동철학으로 삼고 살아왔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다.
사랑을 즐기되 음란하지 말고,슬퍼 하되 상처를 입기까진 하지 말라는 연애법(?) 중의 앞 부분만을 전용해서 ,
음란할 음(淫)에 빠질 음이란 훈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고 즐기되 집착하지 말라는 말로 바꿔 행동철학을 삼은 것이다.
20대 초반에 해낸 일이었고,방황을 하거나 쾌락쯤을 추구하면서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중요한 가정생활에서 상대에게 집착한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가정파괴를 부르게 된 원인제공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워낙 어려서부터 일생일대의 목표를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으로 설정하고 살아왔고,
느지막히 이룬 가정을 화목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서 목표달성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었는데,상대는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었던 것일까?
목숨을 건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꿈을 포기하게 됐고,약간의 방황끝에 제2의 삶의 목표를 설계해가게 됐다.
다 끝난 줄 알고 좌절했던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지만,지금은 아주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의 부모님들께서 화목하고 행복하지 못해서, 내가 겪은 고통이 너무 컸었기 때문에,나는 자식들에게 그런 삶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몰두한 것이 지나쳤던 모양이다.
말로만 낙이불음을 외치고 ,정작 행동은 집착의 끝을 보고야 말겠단 식으로 살았던 것인지도...
그래서 전혀 밟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전철을 밟고 나서야 철이 들고 깨달은 바를 피부로 느끼며 후회하게 되는...
결국 인생이란 스스로 부딪혀 보고 깨져 봐가면서 스스로 가꿔가는,창조해가는 예술인 것이다.
누구의 것도 모방할 수 없고,다 나름대로의 창작물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스승 세네카께서도 인생을 가장 어려운 예술이라 갈파하신 것이다.
즉,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위대한 예술을 하는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니...
사소한 일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화조차도 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은 30여 년 간 명심하고 살아왔던 낙이불음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서이다.
삶 조차도 초월한 ,집착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자유자재한 경지에 달하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경지인데,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있어온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직접 겪어 보지 못하면 제아무리 좋은 가르침이어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존재들인 걸까?
그래서 인생에 관한 수많은 가르침을 전하시면서도 저런 명언까지를 함께 내보이신 것일까?
'옛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지 않으냐?"고 흔히들 말하면서도 사실 옛말대로 살지 않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당신들께서 직접 겪어 보시고 ,가슴을 치고 한탄을 하며 ,후손들을 위해 다듬고 다듬어서 전해주신 가르침인데...
어른들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요즘들어 나잇값을 못하는 어른들이 워낙 많다 보니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대접하지 않고,어른들 말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공연한 참견을 한다며 해코지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잘 생각해 보면 어른들의 잔소리는 젊은 사람들이 잘 되길 바라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귀기울여 듣고 ,일부러 찾아서라도 읽고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을 갖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깨져 보고 실패도 해 보면서 '역시 그랬군!'하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한 번으로 그치면 이내 잊고 마는 습성도 있으니 ,두 번 세 번 겪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실패는 길고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보약이 될 수 있지만,
그런 실패를 피하고 피하다가 나중에 나이들어서 실패를 하게 되면 ,견뎌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참으로 비참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이혼의 고통을 중년에 겪게 해준 전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가서 사례를 하고 싶거나 하진 않지만,마음만은 고마워하며 간직하고 있다.
한 살이라도 젊어서 경험을 했기에 ,이내 훌훌 털어버리고 적응을 해왔고,그러다 보니 뜻밖의 선물이었음을 깨닫게까지 된 것이다.
만일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고 나서 보복하듯 황혼이혼을 하고 내팽개쳤다면 아마 뒷목을 쥐고 쓰러져 만인의 적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아흔 일곱 살까지 그리도 정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께서 주무시듯 돌아가시고 나자 1년을 버티지 못하시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세상엔 온통 감사한 존재들 뿐이란 걸 알듯말듯도 하다.
나쁜 사람들에겐 반면교사가 돼 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해야 하고,본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겐 가르침을 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매사에 감사를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의 비결이기도 하다는 걸 알면 세상 살기 정말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