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 미국.과학자.외교관.정치가.
그는 18세기의 미국인 가운데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저명한 인물일 것이다.
1757년까지 약간의 재산을 모았고,리처드 손더스라는 필명으로 펴낸 금언집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은 처세술의 교본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전기에 관한 실험보고서와 이론은 유럽 과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는 또한 1757년에 정치생활의 첫걸음을 내디딘 후 30여 년 간 큰 족적을 남기게 됐는데,식민지의 대변인으로 영국의 관리들과 토론을 벌였고,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했으며,미국 독립전쟁 때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얻어냈다.
또한 영국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미국 대표로 참석해서 13개 식민지를 하나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는 조약을 맺었으며,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들었다.
난로와 피뢰침,복초점 안경의 발명 등으로 일상생활의 편리와 안전에 기여한 바도 컸다고 한다.
소방대,도서관,보험회사,학교 ,병원 등을 북아페리카 처음으로 세우는 등 이바지한 바가 적지 않다.
프랭클린처럼 생각이 넓고 이타적인 사람이라면 널리 존경을 받았을 법도 하지만,그는 동시대에도 미움을 받은 경우가 있었고,
후세에도 종종 물질만능주의자니 위선자니 하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인의 국민성 가운데 가장 나쁜 특징들을 한데 모아놓은 인물이라고 하거나,근대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조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라는 ...
그러나 이런 비난은 오해에서 생겼다는 것이 그를 존경하는 이들의 생각이다.(브리태니커)
세계 경제를 장악한 , 세계 단일화를 꿈꾸는 유대계 지하조직쯤으로 회자되는 프리메이슨리의 일원으로
빌 게이츠,빌 클린턴,존 록펠러 등과 함께 거명되고 있기도 하다.
나는 경험을 최고의 스승이라 생각한다.
정신적 경험이든 물리적 경험이든 ,자신이 경험한 바를 글이나 구전 등으로 전해온 것이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면 과연 인류는 수천 년 전보다 진화를 했는가고 묻는다면, 의문부호를 달 수 밖에 없는데,
그 중심에는 매번 똥파리 정치꾼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우리 나라 역시 예외없이 반만 년의 휘황찬란한 역사를 지닌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간신배들이나 역적,그리고 최근의 친일 매국노 등이 간신배가 돼서,역적이 돼서 진로를 막아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그렇고,세계사가 그렇듯,그런 간신배들과 역적들이 기승을 부릴 무렵이면 민중들이 혁명을 이끌었다.
우리의 경우 1894년의 동학혁명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봉건체제의 개혁을 위해 1894년 3월,1차로 봉기하고,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고자 봉기하여 ,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당시 가장 밑바닥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농민 중심의 혁명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민주화의 열매를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동학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결과라 할 수 있는데,
혁명봉기 121주년을 맞은 작금의 현실은 당시와 견줘 봐도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서민들의 삶은 곤궁해져만 있다.
오죽하면 잔챙이 미개인이 무소속 선거혁명을 부르짖게까지 됐고,도올 선생 등이 행동하라고 외치고 있으며,
최근엔 민주주의 국민행동(민주행동)이 '다시 민주화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올 초 발기하게 됐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개인과 단체 등이 민주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공연하게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권의 민중농락 행위는 극을 향해 치달리고만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들이 ,어디 한 번 꿈틀거려 봐라며 짓밟아 문질러대고 있음에도
쥐죽은 듯 조용히 숨을 죽이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행태를 취하고 있으니,과연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저것들은 잘 모를 것이다.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궁핍한지를...
그들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설사 그랬더라도 거기서 배우질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만 키워서 사회를 그르치는 데 앞장서왔기 때문이다.
쥐새끼라고 초등학생들로부터도 모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는 전직 대통령이 있고,
어미 아비를 흉탄에 잃은 경험이 있는 현직 불법 댓통년이 민중들을 깔보고 짓밟는 독재행태를 벌이고 있다.
전두환이나 노태우등의 깜냥도 안 되는 군바리들 뿐인 것들이 총칼을 앞세웠을 때도 목숨을 바쳐 저항을 하여 겨우 기틀을 닦아 놓았건만,
그 민주투쟁의 중심에 있던 무리들이나 가장자리에서 구경만 하던 무리들이 모두 희생의 고귀함은 잊은 채 ,
곶감 빼먹는 데만 급급하고 있으니 ,지하에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실 순국열사들을 뵈올 낯이 없다.
그나마 그 곶감도 다 떨어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현재 정치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무리들이나 ,민주화투쟁을 하는 무리들 중에도 상당수가 정치를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하고 있고,
호시탐탐 기회만 주어지면 저 몹쓸 무리들과 합류할 생각만 하고 있으니 ...
결국은 우리들 민중들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걸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배워야 한다.
물론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본받자는 흐름이 주욱 있어왔지만,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지에 천착하면 비참하기 그지 없다.
친일 매국노를 척결하고 친일파 재산을 국가에 환원시키잔 주장을 하며 서명운동을 하노라면 ,
친일 매국노가 뭐냐고,왜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하느냐며 젊은 사람들이고 나이든 사람들이고 반문해오는 것이 현실이니 말해 무엇 하리오?
우린 10년도 안 된 시점에 권력교체를 경험해 봤다.
하지만 결국은 실패(?)했고,다시 그것을 향해 달려가자고 외치고 있지만,과연 실패를 한 그 때와 뭐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는지?
오히려 친일 매국노들의 시멘트 지지층만 넓혀주고 공고히 해준 꼴이 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여당이 귀태 독재자의 딸을 중심으로 갈라져서 내분을 하고 있는 사이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승리의 발판으로 삼을 생각은 안 하고,
친일 매국노 척결 의지 탓에 의문사를 한 사람의 이름만 도용해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데만 급급하고 있으니...
민중들의 정치혐오증만 쑥쑥 키우고 있는 꼴이고,
지난 대선에서 민중들의 희망으로 급부상한 인사 마저 저들의 묵은 틀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꼴이 가소롭기만 하다.
조용히 살고팠던 나,미개인이 친일 매국노가 전횡을 일삼고 있는 곳의 한가운데서 시위를 하다 못해,
시민운동의 회원으로 등록하기에 이르렀고,온라인으로 무소속 선거혁명을 부르짖게까지 됐다.
우리들은 갓난아기였다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무릅쓰고 수만 번 도전을 감행한 끝에 말도 하고 있고 걷기도 하고 있다.
진리란 개인사에서부터 전 국가적으로,전 우주적으로 공히 적용되는 영원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태어나자 마자 말도 잘 하고 걷기도 잘 하며,공부도 잘 하고 일도 잘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실제 경험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이 ,
사회적 ,국가적 일에 있어서 만큼은 저절로 이뤄지길 바라며 수수방관만 하려는 건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 무책임한 행보가 아닐까?
우리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선 얼마간의 불편과 희생,자유포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
정작 정의로운 세상이란 중차대한 부문에 있어서만은 나는 희생도 ,불편도 ,자유제한도 하지 않고 ,
저절로 얻어지는 것을 받아만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건 패망의 지름길임을 우린 알지 않는가?
이러다간 다시 과거 봉건체제로까지 복귀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이미 우린 귀태신의 딸을 전제군주로 모시는 듯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린 프랭클린의 저 말이 말하 듯 ,남의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냐고 자기 합리화에 써먹지 말고,
그런 사람이 없다 하니 우리가 해 보자며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8세기의 그는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으나 ,21세기인 지금에 와선 저걸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며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로 삼아야지 않을까?
그러나 18세기의 저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자신의 게으름을,비겁을 합리화 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면
과연 우리들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나댈 자격이 있다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