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영국.극작가.시인.
그의 작품은 영어로 된 작품 중 최고라고 찬사받고 있고 셰익스피어 자신도 최고 극작가로 손꼽힌다.
그는 자주 '국민 시인'과 '에이번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로 불리는 그는 잉글랜드 중부의,영국의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소읍의 중산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천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인 스트랫퍼드에서 ,비교적 풍족한 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1577년 경 가업이 기울면서 가사를 도와야 했고,학업을 중단하고 1580년 경 런던으로 나오게 됐다.
주로 성서와 고전을 이용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11 세에 입학한 문법 학교에서 문법,논리학,수사학,문학 등을 배웠는데,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그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대학에서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력과 무대예술을 대상으로 타고난 감각,다양한 경험,인간을 대상으로 한 심오한 이해력은 ,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충분했고,자연 자체에서 깊은 생각과 탁월한 지식을 수집한 인물로서 그 세대 최고의 희곡가로 불리게 됐다.
동료 문인들로부터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해서 품격이 떨어지는 연극을 양산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
그는 1594년부터 당시 연극계를 양분하는 극단 중 하나인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작가가 되었다.
극작가로서 1590~1613년까지 대략 24년 간 희극과 비극을 38편이나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생전의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셰익스피어 한 명 만은 못 넘긴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1616년 죽어서 고향의 교회에 묻히는데,그의 흉상 아래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푸스는 그를 소유한다"
그는 생전에 이미 최고의 찬사를 받았지만,사후에도 계속 숭앙하는 대상이 되어 거의 신격화되고 있으니...
비평가 토마스 칼라일은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 평가되고 있다.
'온화한 셰익스피어'라고 불렸지만,인간심리의 통찰에는 비할 수 없는 넓은 안목이 있었고,완성 과정에 있던 영어의 잠재력을 극도로 발휘하였다.
그는 르네상스 영국 연극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극작가로서 ,
사극,희극,비극,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창작의 범위와 당대 사회의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관객층을 향한 호소력으로 ,
크리스토퍼 말로,벤 존슨,존 웹스터 등 동시대 탁월한 극작가를 모두 뛰어넘어 큰 성취를 이뤄냈다.(위키백과)
비겁한 자들이 수없이 말을 바꾸면서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
일구이언 이부지자(一口二言 二父之者)란 말이 아니어도 그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정치꾼들이 하고 있는 비겁한 짓이고,원로들이란 나잇값도 못하는 인사들이 하는 짓이다.
언론들이 하고 있는 짓이며,마피아로 불리워지는 각종 관공서나 공공기관,공기업 등에서 종사하는 자들이 하고 있는 짓이다.
그런 짓의 결정판이랄 수 있는 ,인정할 순 없지만 엄연한 대통령으로 민중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박근헤가 하고 있는 짓이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을 비난하는 박근헤는 입만 열면 거짓말과 식언을 해대고 있으니 ...
미국의 뇌과학자들의 의견을 빌자면 ,그녀의 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구조 자체가 다르다 하니...
로열 패밀리여서일까?태어나선 안 됐던 개間의 딸이어서일까?
화장실 가기 전의 태도 다르고 볼 일 보고 나와서의 태도가 다른 전형적인 개間인데...
뿐만 아니라 이해득실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자들도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으니...
그런 것까지 따지자면 일반에서도 그런 존재들은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그들 역시 이전의 그들을 스스로 죽이는 것이니 ,참으로 비겁한 경우의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비겁해져서 죽음에 앞서 여러 번 죽는 일을 방지하려면 ,우리는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사회생활에 뛰어들기 전 흔들림없는 관(觀)을 세워야 할 것이다.
나는 다행히도 고교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고 일찌감치 인생관,가치관,경제관 등 이름을 붙여가며 정립과 손질을 거듭해왔다.
그러길 30여 년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여전히 손질 중이다.
하지만 미숙함을 깨닫고 성숙하는 과정에서의 수정은 있었지만,죽음에 해당하는 행위는 해 본 일이 없다 할 수 있는데,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지조를 지키려는 자세가 그럴 수 있게 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제 현 성남시장 이 재명이 하루 휴가를 내고 인근의 아산시로 방문해줘서 ,일찍 가게 문을 닫고 그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그의 무용담과 철학 개진을 얼마간 듣고 질문 시간을 통해 ,내가 그동안 혼란해했던 것들에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인근의 사무실에서 벌어진 뒤풀이에까지 참석을 했는데...
그는 한 때 자신이 현재의 일베와 같은 입장에 있었음까지 솔직히 털어놓으며 자신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줬다.
집안에서 있었던 굴곡까지...
그러면서 불의한 세력들과 싸워온 무용담을 들려줄 땐 얼마간의 동질성을 느끼면서,동시에 앞으로도 끝없이 닥치게 될 위기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갖게 됐다.
얼마간의 위기대처법도 배울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리고 참석자 중 한 사람이 국정원의 흉계에 의한 위험의 가능성을 전제하니 ,까짓 죽는 게 두렵다면 정치,하지도 않았을 거란 식의 말을 들었을 때,
남자다!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넘어서 있었지만,별로 피곤한 걸 못 느껴서 밤운동까지 마치고 냉수마찰까지 마친 후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안 철수의원은 뭐가 저리 급한 걸까?
혹시 이번이 아니면 다신 못할 거라 생각하고 서두르는 것일까?
부디...이번 임기를 마치면 잠시 떨어져서 그동안의 경험을 곱씹으며 정치권 전반을 살면서 내공을 쌓아줬으면 좋겠다.
아직은 왕초보로서 얼마간의 시행착오성 실수나 실패를 용인하겠지만,다시 나섰을 땐 절대 용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돌아오는 길에 한 어르신으로부터 안 철수는 너무 고생을 안 해 본 게 흠이어서 재목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걸 들었는데...
사실 안 철수가 대표하고자 하는 부류들도 부유층이 아닌,서민대중들이 아닌가 말이다.
사명감으로 출발한 건 충분히 알겠는데,가시밭길을 헤치고 새틀을 마련하겠다는 사람의 행보는 아닌 듯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