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1954~ )
미시시피주의 시골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고난을 겪어온 그녀는 14세 때 미혼모가 되고,그 아들이 2주 후에 죽고,
이발사인 아버지와 살기 위해 타의에 의해 테네시주로 보내진다.
고교시절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을 하게 되고,열아홉 살에 지역의 저녁뉴스의 공동뉴스 캐스터를 시작했다.
낮시간 토크쇼,시카고의 AM Chicago의 진행자,오프라 윈프리 쇼를 거치며 토크쇼 장르의 전무후무한 경지를 개척해낸다.(위키 백과)
나는 파경을 맞은 후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파경을 피하기 위해,아니 파경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노라며 두 번이나 바보짓을 하고 나서 벌어진 행복 파노라마의 시작이다.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 하는 것일텐데...
그동안 소모품이라고만 생각했던 스스로를 소중하다 여기게 됐고,사랑하는 법을 찾게 되면서 비로소 행복하단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오매불망, 하고 싶어 했던 사회활동도 시작하게 되고,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설레며 보낼 수 있게까지 됐으니 ...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고 행복하다 느끼게 되고 나니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고,한층 여유로워졌으며 ,삶에의 자세 또한 전환을 하게 됐다.
먹어도 먹어도 부족하다고만 생각하던 데서 벗어나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는 걸 알게 되고,
인생의 큰 그림도 그려 보게 됐으며,자연스럽게 노후대비까지를 마치게 돼서 불안함이나 두려움과도 담을 쌓게 됐다.
가정지상주의자인 나로선 파경이란 실패의 최고봉이었고,파경을 맞은 사람은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 치부를 했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 우주를 다 잃은 듯 살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인데,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잃었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이 아님을 깨닫고 대안을 찾다가 더 큰 기쁨을 찾게 된 것이다.
위의 말을 한 오프라 윈프리도 비참하기 짝이 없는 삶을 극복하고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발돋움을 할 수 있게 됐으니 ...
그의 저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끼게 됐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절망을 했던 것이다.
두 번의 바보짓을 실패하고 나서 운명을 저주하기까지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성공을 하지 못했으니 실패를 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상식이란 것이 곧 진리는 아니니 ...
상식적으론 실패를 했다 해도 절망할 필요는 없고,자신만의 경지를 구축해가노라면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식이란 ,인간이,시대가 만들어 낸 일종의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보이는 것에 불과하고,우주의 질서로 봤을 때 그 보이는 것은 아주 하찮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니 ,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으면서도 훨씬 중요할 수 있는 것에 착안한다면 훨씬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물질만능을 넘어서 물신을 숭배하게까지 된 현실에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은 실패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존경하는 위인들의 삶을 보면 물질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도 고귀한 정신세계를 구축한 사람인 경우가 많으니 ,
어찌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을 실패라 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명예 또한 삶의 한 방편일 뿐,그것이 최고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죽는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잘 죽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얻는다 해도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면 얼마나 치욕스런 죽음을 맞게 될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적으로 잘 사는 길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간다면,돈이나 명예 따위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뿌듯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의 한계라 할 수 있는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그것이 즐거워서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으로,또는 자신의 한계를 실험해 보고 싶어서 달릴텐데,거기엔 완주메달이란 게 있다.
순위에 상관없이 완주를 한 경우에 주는 기념품일텐데...
어찌 됐든 시작을 하면서부터 고통은 시작된다 할 수 있을 것이고,그것을 이겨내며 더런 좋은 기록으로,더런 완주만을 위해서 두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릴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고통의 연속,살아가다 보면 그만 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고,
그런 위기를 잘 이겨내고 끝까지 잘 산 사람들에겐 관이나 장례식쯤의 기념 메달이 주어질 것이다.
마라톤이 결승 테잎을 끊는 순간을 위해 달리는 것처럼,인생도 죽을 때 흐뭇하게 '잘 살았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닐까?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생각한다.엉엉 울 일이 아니라 박수를 쳐줘야 하지 않을까?
난 기회가 된다면 영상이나 글로 ,내가 죽거든 울지 말아달라고,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축하해달라고 유언을 남길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길을 잘못 들어서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놓고 더런 직선으로,더런 곡선으로,더런 왔다갔다 하면서 붓을 놀려야 나의 인생그림이 완성되는 것 아닐까?
직선으로만 주욱 그어진 그것을 그림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린 얼마간의 굴곡을 겪도록 설계돼진 피조물일지도 모른다.
굴곡을 겪되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흔적을 남김으로써 의미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더런 검은색으로만 칠할 수도 있고 ,더런 핑크빛으로만 환하게 칠할 수도 있지만,어느 것도 버려선 안 되는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인 것이다.
절망의 시기를 살고 있다면 큰 그림의 검은 색을 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될테고,희망에 들떠 살고 있다면 지금은 잠시 핑크빛을 칠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핑크빛만인 인생도 없고 검은색 뿐인 인생도 없지 않던가?
설사 그런 인생이 있다 한들 그것을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의 그림을 멋지게 그리기 위해선 적당히 핑크빛도 칠하고 ,검은색도 칠하고 ,흰색,보라색도 칠해야지 않겠는가?
위의 말처럼 실패란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전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란 도전을 했다는 증거이니...
또 다른,더 의미있는 도전을 하라고 실패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씨앗일 뿐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그런 뜻이 아닐까?
실패와 성공을,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시계추에 빗대어 인생을 말하는 사람도 봤다.
좋은 때는 나빠질 것을 대비하고,나쁠 때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얼마간 삶에 초연해져서 살아가노라면 ...
인생,다 거기서 거기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역사를 봐도 그렇고 주변의 '삶과 죽음'을 봐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삶이 그닥 버겁지도 않고 ,따분하지도 않으며,보다 화려한 색으로 나의 인생 그림을 그리려 오늘도 새로운 물감을 찾으러 다녔고,내일도 그럴 것이다.
큰 그림의 빈 곳도 채우고,잘못된 곳은 덧칠도 해가면서 불후의 명작을 완성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