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집옥재에 모였던 잊혀진 근대 |
노 관 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 |
대한전기협회에서 발행하는 『전기저널』 2015년 7월호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경복궁 유적 발굴 조사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소가 향원지와 영훈당 사이에 세워졌음을 확인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돌아본 것이다. 1879년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한 후 8년이 지나 1887년 조선 경복궁에 처음 전깃불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전등소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복궁의 전등 시설은 동양에 에디슨 제품을 판촉하기 위해 설치된 일류 시설이었는데, 조선 정부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미국 문물 수용 과정에서 에디슨 전등회사와 교섭한 결과였다. 고종은 자신이 거처하는 건청궁 안팎에 켜진 환한 전등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문으로 번역된 근대 지식 건청궁 곁에는 고종이 서재 겸 집무실로 쓰던 집옥재가 있었다. 집옥재는 1881년 경복궁 함녕전 별당으로 시작했다가 1891년 건청궁 곁으로 옮겨졌다. 고종은 이곳에 약 4만 권의 책을 보관하고 있었고, 그중에 약 1,400권의 책이 비교적 단기간에 중국에서 집중적으로 들여온 이른바 개화서적이었다. 개화서적은 대개 부국강병에 관한 신서적이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영미 선교사가 영어 원서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들이 많았다. 중국은 1860년 영불연합군에 의한 북경 함락의 충격을 딛고 양무운동을 개시, 서양 선교사를 고용해 서양서의 번역과 출판에 열심이었다. 1862년 중국 최초의 외국어학교로 시작한 북경 경사동문관에서는 『만국공법』의 저자로 유명한 마틴이 활약하였고, 1865년 중국의 무기공장으로 시작한 상해 강남제조총국의 번역국에서는 『격치휘편』을 통해 중국의 과학 계몽에 힘쓴 프라이어가 활약하였다. 한문 근대, 일문 근대와 영문 근대에 밀려나 조선 정부는 영국의 근대 공장은 물론 영국의 근대 경제학에 관한 책도 입수하였다. 이번에는 상해가 아니라 북경이었다. 마틴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 포셋의 저서 『Manual of Political Economy』의 번역을 경사동문관 부교습 왕봉조에게 의뢰하여 『부국책』(1882년)을 펴냈다. 『부국책』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서양 근대 경제학을 활용해 중국의 재원을 널리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영국 근대 케임브리지 경제학은 『부국책』을 통해 조선에 도착하였다. |
2015.10.16 11:08
경복궁 집옥재에 모였던 잊혀진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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