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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姓)과 씨(氏)는 뭐가 어떻게 왜 다른가?

⊙ 원래 姓은 母系를 표시, 氏는 父系를 표시, 최초의 姓들은 모두 ‘女’ 부수 사용
⊙ 周와 로마의 姓氏제도 유사, 姓은 로마의 ‘Gens’, 氏는 ‘Familia’에 해당
⊙ 중국 史書가 최초로 기록한 법흥왕은 募씨로 되어 있어, 진흥왕순수비에도 신하들의 성씨는
보이지 않아
⊙ 고려 이후에는 西域·東南亞 출신 귀화자 많아… 장순룡·인후 등은 정승 반열에 오르기도

글 | 김정현 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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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帝가 탄생하는 모습. 황제의 어머니가 姬水에서 황제를 낳은데서, 姬라는 姓이 생겼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성씨(姓氏)’를 ‘성(姓)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예컨대, 김씨, 이씨 하는 말에서 김(金), 이(李)라고 하는 성에다 존칭으로 씨(氏)를 붙여준 것이 ‘성씨’라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중국 주(周)나라 때에는 성과 씨가 별개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성의 기원(起源)을 주대(周代)에 두고 있었다. 주나라에서 혈통 표시로 일찌감치 등장한 것이 성이었다. 당시 주 왕실의 성은 희성(姬姓)이었다.
 
  1955년에 조좌호(曺佐鎬) 동국대 교수가 펴낸 《동양사대관(東洋史大觀)》은 주대의 성씨제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존칭 ‘姬’는 원래 周나라 王室의 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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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農氏의 姓인 姜은 그의 어머니가 姜水 가에서 신농씨를 낳은 데서 비롯되었다.
  〈주의 성씨제도는 로마의 성씨제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주나라 사람의 성은 로마의 ‘Gens’에 해당한 것인데 여러 성 가운데 주 왕실에 속하는 희성(姬姓)이 가장 고귀하고 유력하였다. 성을 여러 씨(氏)로 나눴는데 씨는 주로 거주하는 지명 또는 세습하는 관명(官名)을 따서 붙였다. 씨는 로마의 ‘Familia’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귀족의 칭호는 성(姓)·씨(氏)·명(名) 세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보통 남자는 씨와 이름을 칭하고 여자는 성과 이름을 칭하였다. 가령 진(陳) 나라의 공실(公室) 성은 규(嬀)이며 씨는 진(陳)이었다. 일찍이 진나라 한 공자(公子)가 공실을 찬탈한 바가 있는데 춘추(春秋)에는 그를 진타(陳陀)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진은 씨이고 타(陀)는 이름인데 그가 남자(男子)이기 때문에 성인 규를 생략한 것이다. 그리고 진에서 위국(衛國)으로 출가한 여자가 있었는데 여규(厲嬀), 재규(載嬀)라 하였다. 그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성을 규(嬀)라 하였다. 이것은 로마에서도 같은 것으로 이름(persona), 성(Gens), 씨(Famillia)를 표시한 것인데 남자는 보통 성을 생략하였다.
 
  주 왕실의 성은 희(姬)의 성인데 여자를 모두 희(姬)라고 불렀기 때문에 뒤에 희가 일반 여자의 존칭이 되었다. 주인(周人)의 성은 결혼에서 중요한 의의(意義)를 가진 것으로 그것은 동성간(同姓間) 결혼을 금(禁)하는 것이었다.
 
후세에 이르러 씨족제도가 문란해져서 성이 사실상 소멸하고 씨와 성을 혼용한 후에도 동성불혼(同姓不婚)의 법이 실제 동씨불취(同氏不娶)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왔다. 가령 장씨(張氏)와 장씨(張氏), 이씨(李氏)와 이씨(李氏)는 아무리 혈연이 멀다 하여도 서로 결혼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었다.〉
 
  주나라의 왕실 성이 희(姬)라고 하였는데 왕실에서 제후(諸侯)로, 즉 봉건국가의 군주로 나가면 동일족으로 희의 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씨(氏)를 새로 갖는 것이 주의 성씨제도였다. 이 제도는 주의 종법(宗法)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주의 종법엔 대종(大宗)과 소종(小宗)이 있었다. 대종은 종갓집과 같은 것으로 처음의 시조(始祖)를 영구히 받드는 것이었다. 소종은 분가(分家)한 계보들을 말하였다.
 
  제후국의 군주로 봉을 받아 소종이 된 맨 처음의 사람을 시봉자(始封者)라고 하였다. 시봉자는 새로운 성을 가졌다. 그것을 ‘씨’라 했는데, 이 씨를 가지고 다시 새로이 혈통을 표시한 것이다. 소종의 시봉자 후손들은 계속 이 ‘씨’를 이어 갔다. 그러다가 그들의 후손에서도 ‘씨’를 만들기도 했다. 이것이 씨의 분출(分出)이다. 여기서 많은 종류의 ‘씨’가 등장하게 된다.
 
  주나라 시대에 최초로 나타난 성들은 모두가 ‘계집 녀(女)’를 부수(部首·글자 변에 붙은 것)로 사용했다. 주나라 왕실의 성이라 하는 희(姬)를 비롯해서 강(姜), 규(嬀), 사(姒), 요(姚), 길(姞) 등이었다.
 
  ‘희’는 황제(黃帝)의 어머니가 희수(姬水)라는 곳에서 자식을 낳은 데서 비롯했다. ‘강’은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서 자식을 낳았으므로 ‘강’을 성으로 삼았다. ‘요’는 우순(虞舜)의 어머니가 요허(姚墟)에 살았으므로 이를 성으로 한 것이다.
 
  황제, 신농씨, 우순은 모두 중국 역사가 신화적 인물로 묘사하는 조상들이다. 이들 신화 속 인물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황제는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黃河)지역을 최초로 다스린 제왕이라는 의미다. 황제의 이름은 헌원(軒轅)이었다.
 
  황제, 신농씨, 우순 같은 신화 속 인물들의 성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비롯했다. 성은 원래 모계(母系)를 표시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반면에 제후국의 혈통을 표시하는 ‘씨’는 부계(父系)를 표시하는 것이다. 제후국의 군주가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李’씨의 유래
 
  중국 고대 성씨의 유래를 밝혀 주는 책들이 있다. 5세기에 나온 《위서(魏書)》 〈관씨지(官氏志)〉, 12세기에 나온 《통지(通志)》가 그것이다. 남송(南宋) 때 간행한 《통지》 씨족지(氏族志)에 나타난 이(李)씨의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상(商)나라 때 이정(理征)이란 고위관리가 어떤 사건으로 폭군 주왕(紂王)에게 죽음을 당했다. 그때 그의 부인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정(利正)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 그 모자는 달아나면서 어느 나무 아래서 허기진 몸을 잠시 쉬었다. 이 나무는 오얏나무였다.
 
모자는 떨어진 오얏나무 열매로 배를 채웠다. 덕분에 모자는 허기를 면한 후에 무사히 딴 나라로 갔고 거기서 아들은 장성하였다. 이후 손자까지 두었고 그 손자는 진(陳)의 대부(大夫) 벼슬까지 올랐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생명을 구해 준 오얏나무를 잊을 수 없다고 하여 오얏나무 이(李)를 성씨로 삼았다.〉
 
  위에 소개한 성씨의 연원을 소개한 책들을 보면, 성씨 가운데는 국명(國名), 지명(地名), 관직명(官職名) 등에서 씨의 글자, 즉 성씨가 된 것이 많았다. 정(鄭), 조(趙), 한(韓), 오(吳), 신(申), 조(曹), 정(丁), 성(成), 서(徐), 황(黃), 노(魯), 송(宋), 주(朱), 진(陣), 양(梁) 등이 나라이름에서 취한 성씨다. 백(白), 배(裵), 노(盧), 방(方), 소(蘇), 신(辛), 양(楊), 고(高), 유(劉), 원(元) 등은 식읍(食邑·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려준 지역)에서 따온 성씨다.
 
강(姜), 하(河), 임(林), 유(柳), 지(地), 천(千) 등은 지명과 관련한 성씨다. 벼슬이름, 즉 관직에서 따온 성은 장(張), 윤(尹), 최(崔), 홍(洪), 차(車), 추(秋), 사(史) 등이다. 자(字)와 시호(諡號)에서 유래한 성씨도 있는데, 이는 조상의 자나 시호에서 한 글자를 따서 성씨를 삼은 것이다. 손(孫), 문(文), 민(閔), 남(南), 공(孔), 유(兪), 전(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신라는 單姓, 고구려·백제는 複姓
 
  한국인의 성씨 기원은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알 수 있다. 물론 각 성씨의 문중들이 족보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반면에 《삼국사기》는 신라의 성씨 등장에 자세한 설명이 있고, 백제와 고구려의 성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하고 있다.
 
  신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잘 알려진 6촌의 성씨가 있었다. 그들 성씨는 최(崔), 정(鄭), 이(李), 손(孫), 배(裵), 설(薛)이다. 그리고 왕족 성으로 박(朴), 석(昔), 김(金)이 있다.
 
  현 한국인의 성씨들 중에는 신라에 등장한 성씨가 인구수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고구려나 백제계 성씨는 오늘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씨(高氏) 성이면 우리의 역사에서 먼저 고구려의 건국시조 고주몽(高朱蒙)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고씨는 고구려 고씨가 아니라 탐라(제주도)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근래에 와서 뒤늦게 고구려 고씨에 기원을 둔다고 주장하는 고씨들이 있지만, 보학계(譜學系)에서는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하여 인정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삼국사기》가 언급한 성씨들은 대개 한 글자로 된 단성(單姓)인데 비해, 백제와 고구려인의 성은 대개 두 글자로 된 복성(複姓)이라는 점이다. 신라는 중국 당(唐)나라 성씨제도에 영향 받아 주로 단성을 사용하였다. 당나라는 세족(勢族)들의 성씨가 대부분 단성이었다.
 
  신라의 성씨 기원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비롯해서 3대 유리왕(儒理王) 때 6촌에서 등장하였다는 성씨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설(說)도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중국의 사서(史書)에 대한 검토에서 비롯한다. 신라는 23대 법흥왕(法興王·514~540) 이전 왕들의 경우에는 시호(諡號)와 성씨도 없었다고 한다.
 
중국의 《양서(梁書)》와 《남사(南史)》는 신라의 경우 법흥왕 때 와서 비로소 성씨를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법흥왕은 성씨를 모(募), 이름은 진(秦)이라고 기록했다. 《북제서(北齊書)》는 법흥왕 다음의 왕인 진흥왕(眞興王·540~576)을 김진흥(金眞興)이라 기록했다. 신라 임금을 김씨라고 한 것은 이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중국 역사서에는 법흥왕 이전 신라왕의 시호와 성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사서에 의하면 신라에는 문자가 없었다고 한다. 문자가 없었으면 의당 성씨도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법흥왕이니 진흥왕이니 하는 시호는 중국에서 전래되어 법흥왕 때부터 비로소 사용한 것으로 《삼국사기》에서도 기록하였다. 법흥왕 이전의 왕들은 니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법흥왕 이후 한자 성씨 사용한 듯
 
  ‘신라가 한자 성씨를 갖게 된 것은 법흥왕 이후’라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진흥왕 순수비(巡狩碑)이다. 진흥왕은 새로 정복한 지역에 순수비를 세웠는데, 여기에 기록한 신하들의 이름을 보면 성씨가 나와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경남 창녕(昌寧)에서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를 보자. 〈喙(훼) 居七智(거칠지) 一尺干(일척간) 沙喙(사훼) 心表夫智(심표부지) 及尺干(급척간) 村主(촌주) 麻叱智(마질지) 述干(술간)〉이라는 내용이 있다. 훼(喙)는 이씨 성을 하사 받았다는 육부의 양부(梁部)를, 사훼(沙喙)는 최씨 성을 하사 받았다는 사량부(沙梁部)를 말한다.
 
촌주(村主)는 비를 세운 지역의 마을 촌장을 말하는데, 그의 이름이 마질지(麻叱智)인 것이다. 일척간(一尺干), 급척간(及尺干)은 중앙관리의 벼슬 이름이고, 술간(述干)은 지방관리의 벼슬 이름이다. 거칠부지, 심표부지, 마질지는 신라말 발음으로 표기된 신하들의 한문 글자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비는 양부의 일척간 거칠부지, 사량부의 급척간 심표부지, 촌주 술간 마질지 3명을 공신(功臣)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진흥왕의 신하들이라면 신라 6부(六部), 즉 6촌(村) 사람들의 후예일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성씨가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결국 진흥왕 시대까지도 신라에 성씨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5대 진지왕(眞智王·576~579)과 26대 진평왕(眞平王·579~632) 때 세운 비에서도 신하들의 이름만 있었고 성씨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보면, 신라가 박혁거세를 비롯해서 유리왕 때 6촌의 성씨, 그리고 탈해왕(脫解王)과 알지(閼智)에게 석씨(昔氏)니 김씨(金氏)니 하는 성씨가 실제로 그들 등장과 함께 나타난 것인지 의심스럽다.
    
  濊의 同姓不婚 풍속
 
  한반도의 성씨와 관련해 중국 《후한서(後漢書)》에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이 책은 지금의 함경도 지방에 있던 예(濊)의 풍속에 대해 언급하면서 “같은 성(姓)끼리는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에 동성불혼(同姓不婚) 풍속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예맥에서는 성씨가 있었다는 얘기다.
 
예에 구체적으로 어떤 성씨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후한서》는 중국 송(宋)나라 범엽(范曄)이 저술한 책으로, 예뿐 아니라 부여와 초기의 고구려, 옥저(沃沮)에 관한 기록도 있다. 그런데 ‘동성불혼’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예가 유일하다.
 
  예에 성씨가 있었다면 그것은 중국 한(漢)나라가 한반도 북부에 설치했던 한사군(漢四郡·낙랑, 진번, 임둔, 현도)을 한동안 설치한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의 성씨는 한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예는 한반도 북쪽 지역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지역까지 남하했다. 예가 망했을 때 그 주민들은 진한(辰韓), 즉 신라지역으로 이주했는데, 이때 그들이 사용하던 성씨가 신라로 전해졌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성씨는 대부분 신라에서 비롯한 것이다. 여러 문중의 족보들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설사 신라 토종(土種) 성씨가 아니더라도 중국 등에서 신라로 귀화(歸化)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신라 왕족의 세 성씨나 6촌의 성씨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성씨가 신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신라가 당나라의 성씨 문화와 그 제도를 본격적으로 전래 받기 시작한 것은 통일 이후였다. 《삼국사기》의 신라 관련 기록들을 보면 문무왕(文武王·661~681) 이후의 기사에서 성과 이름을 함께 표기한 인명이 부쩍 많이 등장한다. 이를 보면 그 이전까지는 높은 신하들의 경우에도 성씨를 갖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왕실에서만 혈족의 표시를 위해 성씨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신라와 당나라 간 교류가 활발했다. 당의 문물(文物)과 제도가 전파(傳播)되면서 성씨제도도 본격적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西域에서 온 歸化人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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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리 왕조를 창건한 리 태조의 동상. 제공=박순교
  신라 6촌의 성씨를 중국인의 성씨와 비교해 보면 배씨(裵氏) 성 하나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주류(主流)라고 하는 백가성(百家姓)에 들어갔다.
 
  중국의 성씨관계 자료를 보면, 박씨(朴氏) 성만은 한반도에서 등장한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성씨대전(中國姓氏大全)》 기록을 보면 고려에서 원(元)나라로 귀화한 환관(宦官) 박불화(朴不花)가 중국 박씨의 선조다. 그 뒤에는 ‘조선족이 이 성을 많이 갖고 있다(朝鮮族多此姓·조선족다차성)’고 기록해 놓았다. 반면에 ‘더러는 분명하지 않은 내용으로 고대 파군(巴郡)에 있었던 소수 민족의 수령인 박호(朴胡)한테서 비롯한 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 각 성씨의 문중에서 펴낸 족보들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없는 성씨들이 신라에서 비롯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강(姜), 남(南), 노(盧), 라(羅), 문(文), 방(方), 변(卞), 백(白), 부(夫), 사공(司空), 서(徐), 성(成), 소(蘇), 송(宋), 신(辛), 안(安), 여(呂), 오(吳), 위(魏), 유(兪), 육(陸), 윤(尹), 임(林), 장(張), 정(丁), 제갈(諸葛), 조(趙), 조(曹), 주(周), 차(車), 홍(洪), 황(黃) 등이 그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가운데 신라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유명 인물은 왜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들 성씨의 족보 기록을 보면 대개 귀화인, 그것도 중국에서 온 귀화인들인 경우가 많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귀화자들에 대한 기록이 역사서에 많이 나타난다. 건국 초에는 외래인, 특히 여진족, 거란족 출신의 귀화자가 많았다. 한족계(漢族系), 몽고족계도 많았다. 고려 후기로 들어오면 귀화자들의 출신지가 더욱 다양해지는데, 그중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투르크 혹은 위구르 사람도 많았다. 고려 25대 충렬왕(忠烈王·1247~1308) 조에 귀화한 고위관리 장순룡(張舜龍)이 바로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고려사》는 그를 회회인(回回人)이라 기록했다. 그는 원(元)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원의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수행해서 고려에 왔다가 귀화했다. 장순룡은 원나라에 있을 때 이름이 삼가(三哥)였다. 그는 고려에 와서 낭장(郎將·정6품) 벼슬부터 시작해서 재상 반열의 첨의참리(僉議參理·종2품) 벼슬까지 올랐다. 그가 바로 덕수 장씨의 시조다.
 
  장순룡과 함께 제국공주를 수행해 온 몽고인도 있었다. 그는 인후(印侯)로 본시 이름은 ‘홀라대’였다. 그도 무관 벼슬인 중랑장(中郞將·정5품)을 받게 되었는데 충렬왕이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그는 대장군 인공수(印公秀)에게 “내가 당신하고 친하니, 당신 성을 빌려 썼으면 한다”고 청했다. 인후는 검교정승(檢校政丞)이란 최고 관직의 자리와 함께 공신(功臣) 칭호까지 받았다.
 
  설손(偰遜)이란 이름의 귀화인도 있었다. 그는 위구르인이다. 원나라에 귀화해서 백료손(百遼遜)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학식(學識)과 문장이 뛰어나서 원나라 조정에서 높은 관직을 얻었고, 원의 황태자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공민왕과 즉위 전부터 알고 있던 그는 공민왕을 따라와서 고려인이 되었다. 그의 출생지인 ‘설렌’의 첫 글자를 따서 설(偰)이라는 성을 취했다. 그의 아들 설장수는 이성계 밑에서 활약하다가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東南亞 출신 귀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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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박닌성 딘방(이씨 왕조 발상지)에서 매년 음력 3월 15일 이 태조의 창업을 기려 열리는 덴도 축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은 태조의 8대손이다. 제공=박순교(《화산군 이용상》저자)
  동남아(東南亞) 출신으로 화산(花山) 이씨의 선조가 된 귀화인으로는 베트남 출신 이용상(李龍祥)이 유명하다. 고려 고종 때 귀화한 그는 안남국(安南國·베트남)의 왕족이었다. 당시 안남국도 한자(漢字)를 쓰고 있었고, 중국식 한자 성도 갖고 있었다. 그의 이씨 성은 고려로 귀화한 후 취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 나라 왕실의 성씨였던 것이다.
 
  동남아 출신 귀화인 중에는 27대 충숙왕 때 남만인(南蠻人) 귀화인 왕삼석(王三錫)도 있었다. 남만인은 동남아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왕삼석은 충숙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의술(醫術)에 재능이 있다고 하여 가까워졌다. 그는 아첨과 속임으로 왕의 사랑을 받아 측근 신하가 되었다. 《고려사》는 그가 성질이 경망스럽고 간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도 왕의 총애를 받아 왕실의 성을 하사받고 정당문학(政堂文學)이란 고위 벼슬 자리에 올랐다.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국적의 귀화인이 있었다. 초기에 장사도(張思道) 외 20여 명이나 귀화해 온 일이 있었다. 장사도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예빈경(禮賓卿) 관직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 관직은 종3품 고위직이었다.
 
  세종 때 귀화한 우신(禹信)이라는 남만인이 조선 여인을 얻어 살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밖에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국인, 자바인, 타타르인 등이 귀화한 기록이 나온다. 《세종실록》에는 특히 회회인에 대한 기록이 자주 보인다. 멀리 중동지역에서 한반도까지 육로나 해로로 많이 왔던 것이다.
 
  지금 일본 영토가 된 오키나와에서 온 귀화인 오보야고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배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그는 조선 여인에게 장가들려고 하였지만 조정에서 허가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결혼 후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갈까 하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외국인이 혼자 와서 정착하는 경우이면 장가드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오보야고는 계속 조선에 살겠다는 조건으로 결국 조선 여인과 결혼을 하였다.
    
  歸化 倭人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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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록 김씨의 시조인 김충선의 초상과 유물.
  조선은 홀로 온 귀화인 남자가 조선의 여자와 결혼하면 세금과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었다. 글을 잘 알면 관직도 주었다. 이런 배려가 있었음에도 가정을 꾸린 뒤 본래의 제 나라로 도망가는 자들이 있었다. 《세종실록》에 보면 신하들이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다.
 
  〈이도을치(李都乙赤)가 귀화해 와서 벼슬이 4품에 이르렀는데도 임금의 은혜는 생각지 않고 본래의 나라로 도망하였다. 이런 불충(不忠)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흉악한 놈이므로 그의 처자(妻子)를 모두 천인(賤人)으로 만들어 뒷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소서.〉
 
  또한 이런 기사도 있었다.
 
  〈귀화 왜인인 변좌(邊左)와 그의 아들 변효충(邊孝忠), 변효생(邊孝生)을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국문(鞠問)을 하였다. 변좌 등이 자신들의 직위가 낮고 녹봉이 박하다는 이유로 본토에 돌아가려 한 것이다.〉
 
  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왜인들이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 해 문제를 일으켰다. 귀화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조선인과 같은 성씨를 갖겠다고 조선 조정에 청을 올린 왜인도 있었다. 일본 구주(九州)지방에 살던 의홍(義弘)이란 왜인이었다.
 
  〈저는 백제의 후손인데 조선인과 같은 성을 갖고 싶습니다. 청컨대 부디 성을 하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에서 귀화왜인들이 취한 성은 이씨(李氏) 성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 사고소우 등 15명에게 이씨 성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 28년 때 있은 일이었다. 그들은 화약제조, 포 쏘는 솜씨가 있는 왜인으로, 귀화해 조선인이 됐다.
 
  중종 때는 귀화한 왜인 박산동개(朴山同介)가 있었다. 그는 거제도에 살면서 거제에 왜인들이 침입했을 때는 앞장서서 그들을 격퇴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귀화한 일본인의 후손으로 알려진 성씨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인으로 귀화해서 본관과 함께 알려진 성씨는 김충선(金忠善)이 시조인 김해 김씨(일명 우록 김씨)뿐이다.
 
본명이 사야가(沙也可)인 그는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장으로 참전했으나, 조선의 문물을 흠모해 휘하 병사들과 함께 귀순했다. 임진왜란은 물론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에서 공을 세웠다. 이를 기려 선조(宣祖)는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김씨 성을 하사했는데, 원래 있던 김해 김씨와 구별해 ‘사성(賜姓) 김해 김씨’라고 한다.
    
  요즘 귀화인들은…
 
  고려와 조선에서는 귀화인들이 우리나라의 관습과 제도를 따라 본관과 성을 만들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른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한글로 표기만 하되, 본래의 자기 성을 그대로 갖는 경우가 많다. 귀화인이 귀화국의 성씨 문화에 동화하지 않고, 원래의 성씨를 계속 유지하면 후대(後代)에게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동화되지 못했다는 이질감을 후손에게 남겨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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