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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안철수의 기부]안철수의 기부, 기부문화 물꼬 트나
2011 11/29주간경향 952호
‘제대로 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인 실천 넘어 사회운동 확산 기대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하면서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안철수연구소 구성원 모두가 이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노력해온 ‘존재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5년 3월 18일 안 원장의 안철수연구소 CEO 퇴임사 중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전 안철수연구소 CEO)은 지난 11월 14일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 37.1%의 절반(약 15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부에는 최근 가깝게 지내온 4~5명의 인사가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동참자로는 안 원장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해온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과 안 원장과 친분이 있는 벤처기업 CEO들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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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1500억원 상당의 기부 의사를 밝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본인이 생각하는 ‘공익’ 구체적 실천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은 안 원장의 이번 기부가 2005년 CEO 퇴임사에서 밝혔던 세 가지의 창립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고 있다. 안 원장의 세 가지 창립철학은 ‘공익과 이윤추구의 양립’ 외에 퇴임사에서 밝힌 두 가지를 포함한 것이다.

첫째는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식정보의 가치가 시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남기겠다는 선언이었다. 둘째는 한국의 경제 구조 하에서도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 윤리적 경영으로 자리를 잡겠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퇴임 이후에도 ‘정직한 경영’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수차례 밝혔다.

1500억원 이전에도 안 원장은 나름의 방식으로 ‘공익’을 실천해 왔다. 2000년에는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에게 1인당 650주를 나눠준 바 있다. 안철수연구소 CEO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각종 인터뷰, 강연회에서 기업 생태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포럼에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거론하며 중소기업이 ‘삼성동물원’, ‘LG동물원’에 갇힐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 바도 있다. 이때만 해도 안 원장의 행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안 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단일화’ 이후 그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달라졌다. 1500억원 기부에 대한 정치적 해석도 쏟아졌다. 언론은 일제히 그의 기부와 대선 출마를 연계시키는 해설기사를 냈다.

“동기 순수하지 못한 사재출연과 달라”
안 원장에게 정치 참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안 원장의 진솔한 답을 기다리는 국민들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향해 간다”, “민감한 시기의 기부 발표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정치 참여에 관한 안 원장의 뚜렷한 입장발표를 요구했다. 16일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는 “안 원장은 더이상 신비주의에 기대지 말고 국민과 적극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도 기자들과 만나 “머리 좋은 과학자는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말고 과학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안 원장의 기부가 “만약 그가 대선에 뜻이 있다면 상당한 정치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안 원장의 기부 이후 그의 대선 지지율은 다자구도에서만큼은 압도적 1위를 지켜오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따라잡은 상황이다. 김 평론가는 “릴레이 기부가 이어지고 1월에는 안 원장의 자서전이 나온다. 일상적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 대한 관심이 약화될 만한 때쯤이면 나타나 스트레이트를 치는 격”이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안철수의 기부가 “제대로 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덧붙였다. 김 평론가는 “그동안 진짜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김밥 할머니 같은 분들이었다. 안 원장의 대선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기부는 실천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8000억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세웠다. 삼성 측은 이를 ‘조건 없는 사회환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편법상속 관련 수사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2008년 삼성 특검 당시에도 이 회장은 차명재산의 일부를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저소득계층 자녀의 교육기회 확대를 이유로 지난 8월 사재 5000억원을 기부했다. 이는 2006년 글로비스 비자금 사건으로 정 회장이 검찰에 구속수감되던 시점에서 사재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실행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 이후 청계재단을 세워 331억원을 사회에 환원했지만, 이사진에 사위와 측근이 대거 포진해 있어 ‘사위 환원’ 논란을 자초했다.

안 원장의 기부가 재벌 총수, 이명박 대통령의 기부와 또 다른 점은 ‘확장성’이다. 개인의 실천을 넘어 이것을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려 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 캐릭터로 진정성 느껴져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철수의 기부가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여러 명이 동참한다는 점에서 동기나 목적이 순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사재출연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이나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과 범현대가의 아산재단이 결국 지인과 일가친척으로 한정된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약한 반면, 안 원장의 기부는 사회적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2005년 3월 18일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당시 CEO(오른쪽)가 연구소 창립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경영일선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 원장의 기부가 각광받는 이유는 이것이 일반 대중이 사회에 갖고 있는 ‘냉소주의’와 달리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안밀잠)의 저자 김민하씨가 안철수 열풍 본질 중 하나로 지적한 ‘냉소주의 혁명’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기존의 정치구도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던 것처럼, 재벌 대기업의 성장 과실이 온 국민에게 나눠지지 못하면서 ‘노블레스’에 대한 냉소가 생겨난 것이다.

<안밀잠>의 공동저자들은 안 원장의 ‘착한 사람’ 캐릭터 역시 그의 행동에 진정성을 실어주는 무기로 봤다. 한윤형씨는 “그동안 안철수가 정치인처럼 발언한 적이 없다. 모두 상식선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이다”라고 말했다. 김민하씨는 “방송에서 스스로 ‘나는 욕도 안 한다. 새벽 3시에도 신호등을 지킨다’라고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반응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안 원장의 기부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을 흐리게 한다는 비판을 한다. 진보적 칼럼니스트의 대표주자인 김규항씨는 “안철수는 1500억원을 내놓고도 여전히 부유한데 왜 수많은 사람들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생존에 매달려야 하나”라며 2009년에 쓴 자신의 글을 소개했다.

‘사회 디자인’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 김씨는 “우리 앞에는 기부와 자선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식, 세금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식 사회 디자인이라는 두 가지 디자인이 제출되어 있다”며, “미국식 사회 디자인은 부자들의 일방적인 의사로 운영된다는 근본적 결함이 있다”고 썼다.

당시 김씨가 ‘미국식 사회 디자인’의 대표주자로 거론한 사람은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아름다운가게 총괄상임이사)이다. 2009년 박 시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의 사찰의혹을 폭로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김씨는 “박원순씨의 인간적 진정성과 사회적 헌신을 의심할 사람은 없지만, 그가 부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했다.

안철수 원장이 안철수연구소 CEO 직을 사퇴한 이후인 2005년 11월, 연구소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기부문화를 독려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진행된 것이다. / 김문석 기자


안 원장의 기부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에 대해 김종배 평론가는 “섣부른 지적”이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안 원장은 그동안 기업 생태계와 재벌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했던 사람이다. 그가 사회 구조적인 개혁에 비판적인 사람이 전혀 아닌 상황에서 그의 기부가 사회 구조적 문제를 흐린다는 식의 비판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차후 안 원장이 대선에 뛰어든다면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나름의 제도적 대안과 철학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은 여전히 안 원장의 ‘진정성’을 믿고 있다. 한 직원은 “안 원장이 보유주식을 절반이나 기부한 것이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분은 살아온 삶 자체를 본인이 잘 되는 것보다 사회가 잘 되는 것을 중심에 둔 분”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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