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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0년 이후 의심신고 337건… ‘급발진 사고’ 최종 확인은 0건

가속페달 밟았는지 기록 안남고… 사고 차량 옮기면 판독 어려워

학계 “원인 증명할것” 계속 도전


11일 오전 11시 40분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가스충전소. 쏘나타 승용차 운전자 정모 씨(57)는 기계식 자동세차를 마치고 출발을 알리는 초록 신호등이 켜지자 자동변속기의 기어를 중립(N)에서 주행(D)으로 바꿨다. 그 순간 자동차는 갑자기 고삐 풀린 말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계기반의 눈금은 순식간에 시속 30∼40km까지 치솟았다. 차량은 세차장 맞은편 휴게실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휴게실 안에 쉬고 있던 정모 씨(64)가 사망하고 택시 운전사 2명이 크게 다쳤다. 사고 차량 운전자 정 씨는 “변속기를 작동할 때 분명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가속 페달은 밟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동차가 스스로 급발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씨는 운전경력이 27년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사고 차량은 2012년 12월 25일 점검 때 브레이크와 엔진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차량 자체적으로 급발진한 것인지 운전자의 과실인지는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 끊이지 않는 ‘급발진 의심’ 사고

지난달 19일 19명의 사상자(사망 3명, 부상 16명)가 발생한 서울 송파 버스 추돌사고의 원인을 놓고서도 급발진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은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첫 번째 추돌의 원인을 ‘사고를 낸 버스 운전사(사망)의 졸음운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결정적인 두 번째 추돌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1.2km 구간을 시속 60∼70km로 질주한 부분은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는 버스 운전사가 1분 넘게 필사적으로 핸들을 붙잡고 다른 차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 운전사가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착각한 채 주행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운전사의 경력 역시 20년에 이른다.

○ 의혹 규명 노력에도 밝혀진 것 없어

최근 이 같은 급발진 의심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급발진 의심 신고는 총 18건에 불과했으나 최근 4년간 337건이나 접수됐다.

문제는 신고된 사례가 모두 ‘의심이 간다’는 것일 뿐 최종적으로 급발진으로 확인된 건 한 번도 없다는 데 있다. 방배동 가스충전소 사고에 대해 경찰은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려면 차량이 사고 직후 상태에서 아무 변동 없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고 차량은 사고 직후 계속 이동을 했고 기어 변경도 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급발진 사고 규명의 가장 중요한 장치로 꼽히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이 장치에는 급발진 사고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았는지 여부가 담겨 있지 않다. EDR에 담긴 운행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2012년 사고차량 운전자가 원하면 차를 만든 업체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안이 공포됐으나 3년의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이다.

급발진 의혹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민간 부문에서 끈질기게 이어졌다.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의 급발진 재현 실험에 참여한 김영일 아주자동차대 교수는 “급발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전자제어장치(ECU)에 물을 붓거나 수증기를 넣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 봤지만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급발진은 아직 밝혀진 게 없는 미스터리여서 기업과 정부, 연구원의 합동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전미과학자협회와 미 항공우주국(NASA)까지 동원해 원인 규명에 나선 상태다.

○ 급발진 의혹 언제쯤 풀릴까?

이런 가운데 대표적인 국내 자동차 전문가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가 조만간 급발진 원인을 규명할 새로운 연구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5, 6월쯤 급발진이 발생하는 과정을 증명하는 새로운 보고서를 내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해 5월 “급발진 사고는 브레이크에 장착된 진공 배력 장치 때문”이라며 “이 장치에 의해 연료 파이프라인이 순간적으로 진공 상태가 되었다가 순간적으로 압력이 치솟아 연료가 대량으로 분사되면서 급발진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기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라고 반박했다.

외국에서도 급발진은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달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대해 약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급발진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 정보 공개와 개선 조치가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내의 경우 아직 자동차 급발진을 인정한 조치나 판례가 없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도 30년 넘게 급발진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 이유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얼마 전 미국의 한 자동차 전문가가 자동차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버그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도요타 측에서 이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해 벌금이 부과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건혁 gun@donga.com·김성모·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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