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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범 우리가총각네 팀장(맨 왼쪽)

도시 청년 3인의 농촌 재발견

'쌀 멤버십' '농촌 체험' 등 기획해 농가 경제성과 활력 높여

130명 농민과 계약 맺어 농산물 재배… 숨겨진 이야기 담아 도시에 전달

마늘농가·귤 농부 등 소농에겐 판로를 청년에겐 농촌에 대한 관심 높여


농촌이 시들어간다. 지난 10년간 제주도만 한 논(17만㏊)이 사라졌으며, 인구는 20% 이상 줄었다. 농촌 고령화율(35.6%)은 국가 평균(11.8%)의 3배가 넘는다. 식량자급률은 반 토막 났고, 그 틈에 잠식한 외국 농산품은 유전자변형 농산물 논란 등을 만들며 먹거리 안전을 위협한다. 이 와중에 "도시에서 농민들을 지켜줘야, 농민들이 도시를 지켜준다"며 농촌 혁신을 위해 달리는 청년 3인방이 있다. 김가영(28) 생생농업유통 대표, 박종범(34) 우리가총각네 팀장, 천재박(35) 쌈지농부 실장이 그들이다.

편집자

"한산하던 토마토축제에 토마토 따기 체험 행사를 보태니, 농촌도 도시도 웃었다"

-국내 1호 농촌기획자 박종범씨

"민통선 안에서 농사짓는 분이 있었어요. 농약도, 비료도 안 하니 밥맛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근데 이 쌀이 수매(收買)되는 과정에서 그 지역 쌀과 다 섞였어요. 다른 농부는 농약을 쓰거든요. 너무 억울해서 소비자를 모아 1년치(40만~50만원) 쌀값을 선불로 받고 따로 도정·관리·배달했어요. 농부는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고, 소비자는 양질의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어요."

'쌀 멤버십'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설명하던 박종범(34)씨는 "이런 게 '농촌기획자'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농촌기획자는 박씨가 만든 일종의 '창직(創職)'이다. 농촌의 가치를 도시로 전달하는 중간자 역할이라고 한다. 당연히 박씨가 국내 1호다. 대학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했지만, 박씨는 친구의 경영학 수업을 몰래 수강할 정도로 '기획'에 관심이 많았다. 2003년 첫 사회생활을 '농촌넷(nongchon.net)'이라는 온라인 회사에서 했다. 농촌의 유휴가치를 상품으로 기획하는 것의 그의 역할. 농촌의 빈 민박집이나 축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땐 그냥 월급쟁이였다"던 박씨가 흙냄새를 쫓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사진 한 장이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토마토축제'를 하는데, 축제장만 붐비고 토마토 농가는 한산했어요. 토마토 따기 행사를 기획해 체험하게 했죠. 보고서 작성을 위해 환하게 웃고 있는 도시 아이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모서리에 아이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 농부도 찍혀 있었어요. '농촌도 좋고, 도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

2008년부터 '정보화마을운영사업단'(안행부가 농촌에 정보화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진행하는 사업)에서 일했는데, 이 경험은 박씨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전국 365개의 정보화마을 리스트와 각 마을 관리자는 농촌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네트워크가 됐다. "SNS나 블로그를 통해 개인 농가가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박씨는 농촌의 가장 큰 문제를 "선순환을 위한 동력이 없는 것"이라며 "경제적 동력이 만들어져야 복지·교육·환경·문화 소외 문제 같은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장(死藏)되는 농산품이나 소신 있는 '소농'에게 더 집중하는 이유다. 현재 박씨의 본업은 '우리가총각네'(중소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직거래 쇼핑몰) 마케팅 팀장이다. 낮에는 회사 일을, 밤에는 프로젝트 기획을, 주말에는 농촌 현장을 누비는 삶을 산다. "아직도 할 게 너무 많다"는 박씨. 최근에는 한국슬로푸드지부와 '매실은 노랗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매실이 노랗게 익으면 구연산이 14배가 늘어요. 청매실이 유통하기 편해 덜 익은 걸 파는 거예요. 이걸 도시에 알려야죠. 전 메신저니까요."

박씨의 꿈은 구인 구직 사이트에 '농촌기획자' 카테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정말 좋은 직업이 되면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그럼 농촌도 더 빨리, 더 좋게 변하겠죠?"

"농촌의 숨은 가치, 우리 농산품에 입혀드립니다"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

대학 시절 농촌 봉사활동으로 충남 천안의 한 농가를 찾은 김가영(28·생생농업유통 대표)씨. 마을의 포도 농가가 시끌벅적했다.

"당시 한국과 칠레가 FTA를 맺기 직전이었어요. 전국은 쥐죽은 듯 조용했는데, 그 지역 포도 농가는 '다 굶어 죽는다'며 난리가 났었죠."

호기에 찬 대학생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많은 친구가 '행정가가 되겠다' '변호사가 돼 바꿔보겠다'고 했지만, 김씨는 농촌에 답이 있다고 봤다. 농업에 문외한이었던 김씨는 이후 전국을 돌며 닥치는 대로 농작물을 접했다. 본적지인 남원에 내려가 방울토마토를 따거나 쪽파를 심고, 지리산 자락에서 상추도 재배했다. 수확물은 나눠주고, 그래도 남으면 지역 시장·공판장·수퍼에 내다 팔았다. 2~3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김씨는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농사'만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농업 생산물과 콘텐츠가 도시민들의 신뢰를 얻도록 하는 효과적인 전달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생생농업유통'이 탄생한 배경이다. 지난 2007년 첫 사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햇수로 8년째. 130여명의 농민과 계약을 맺어 고추와 상추를 공급받고, 농촌에서 사라지거나 숨겨진 이야기를 생산물에 담아 도시에 전달한다. "밀 파동이 문제잖아요. 국제 밀가루 곡물가 따라서 계속 오르죠. 고추와 쌀도 그렇게 될지 몰라요. 우리 농촌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협상이 김씨 몫이다. 이를 통해 외국산 농산품만 쓰던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가 국산을 섞어 쓴다.

"20대 중 농업과 자기의 삶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김씨. 그런 결심의 계기는 뭘까. "가치를 찾았죠. 도시에선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느끼기 힘들었어요. 그저 일정 기능에 소비되는 것 같았는데 농촌은 달라요. 정부가 농업을 포기하면 먹을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우린 사람들의 불안, 안전, 건강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입니다. 충분히 가치가 있죠."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한다. "제가 포문을 열었으니 저를 보고 모여드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죠. 저 혼자의 힘은 미천하지만, 다른 청년들이 더 많이 바꿔주면 됩니다. 몇 백 년씩 된 해외 명품 브랜드도 처음엔 소소히 원칙을 지키며 만든 겁니다. 절대 성급하면 안 돼요."

천재박 쌈지농부 실장

"농업 유통 혁신, 소통과 교류에 답 있다."

-천재박 쌈지농부 실장

지난 17일 서울 공덕역 근처 '늘장'(늘 열리는 시민의 장터)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2010년 강원도로 귀촌해 블루베리 농장을 운영하는 젊은 농부 안지원(34·두타베리농원)씨, 문경에서 우엉과 연근을 재배하는 박은정(36·소아농장)씨, 대학생 30여명으로 구성된 농사 동아리 '인텔리겐치아' 등이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쌈지농부'가 늘장 내에 운영하고 있는 '보통직판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지난 3월 29일부터 시작된 '보통직판장'은 농부들의 판매와 도농 교류를 위해 마련됐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데, 이번(8회차)까지 농부 10여 명이 참여했다. 쌈지농부 실장으로 활동하는 천재박(35)씨가 주도한 프로젝트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과 페이스북으로 신청해요. 농촌 생산자도 오고, 장사를 도와줄 대학생들이나 청년 혁신가들도 오죠. 이들이 교류하면 도시 청년들은 각자 '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메신저가 돼요. 또래 젊은이 1명의 파급력이 1000명까지 미치죠."

농부가 너무 멀리 있으면 물건만 보내고 대신 청년 봉사자들이 판매해주고 물품을 좀 얻어간다. 천씨는 "5월 31일에는 한 농부가 마늘을 왕창 보내준다고 하는데, 일손이 달려 마늘을 못 깠다고 하더라"며 "우리가 청년들과 지역 어르신들을 모아 마늘을 까고 깐 마늘을 대신 판매해 줄 계획"이라고 했다. 자주 참가하는 농부들한테 뉴스레터를 보내주고, 다른 장터나 판로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월드컵공원 장터, 광화문 채식 장터, 벼룩시장 장터, 달시장 같은 곳이다. 천씨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제주도 농부 부녀가 귤이 잘 안 팔린다고 보통직판장에 왔었는데, 지난주엔 혜화동 마르셰 도시 장터에도 나가게 됐어요. 물꼬를 터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죠."

쌈지농부는 2009년 8월 만들어진 (서울형)사회적기업이다. 13명의 직원 중 3명은 실제 농부다. 2008년 10주년을 맞았던 모회사 '쌈지(SSAMZIE)'가 파주 '헤이리예술마을'로 이전하면서 빈 땅에 상추 같은 텃밭 작물을 심었던 게 설립 계기다. 농산물 직거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0년. 친환경 유기 농산물 전문 기관 '흙살림'과 함께 '농부로부터'라는 매장을 운영하면서부터다. 직접 생산·판매하면서 유통 채널의 한계를 실감했던 것. 천씨는 "유럽에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직거래 구조가 이미 갖춰져 가격이 안정적이고 품질도 좋다"며 "홍보·마케팅 여력이 부족해 백화점, 대형마트, 생협 등에 들어갈 수 없는 국내 중소농에겐 직거래로 활로를 뚫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서울시와 '농부의 시장'을 진행했지만 이 또한 한계는 있었다. 천씨는 "농부의 시장이 열리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데, 이때 기름값만 20만~30만원이 넘다 보니 사실상 기업화된 영농조합 법인들만 참여할 수 있는 구조였다"고 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한 것이 '보통직판장'이다. 흙에 살았던 5년, 천재박씨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농사는 나와 전혀 별개 일이었어요. 하지만 텃밭을 가꾸고, 농부들을 만나면서 훨씬 건강한 삶이 됐습니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에 만족하니까요. 40세가 되면 아예 귀농해 신나는 농촌을 만드는 일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최태욱 더나은미래 기자]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문상호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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