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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앞바다에서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3호가 해상시위를 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고리원전 문제는 노후화된 1호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가동 중인 6기, 앞으로 가동될 4기 등 최대 10기에 이를 ‘원전지대’ 주민들이 갖는 불안의 크기는 인적 없는 마을이 대변해준다. 남쪽으로 고리원전을 끼고 북쪽으로 월성원전을 둔 울산시민들의 불안도 부산시민들의 불안 못지않다.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별로 없다. 진정으로 안전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원전정책에 대한 원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동네 한 바퀴 돌아보소. 사람들이 와 다들 이사가고 없는지 보는 기 젤로 빠르겠구마.”

길천마을은 조용했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한참 돌아다니고서야 주민을 찾을 수 있었다. 한모 할아버지(74)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재가동에 관해 묻는 물음에 텅 빈 마을을 가리키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마을이 끼고 있는 바닷가로 나가면 문제의 고리원전 1호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횟집도 있고 고기잡이배도 묶여 있는 항구는 여느 작은 어촌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인적이 드물다는 점이다. ‘집단이주만이 살 길이다!’라며 군데군데 걸려 있는 현수막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2007년 고리 1호기의 10년간 수명연장이 결정된 뒤 마을에서도 고리원전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5~7반 주민들을 중심으로 이주행렬이 시작됐다. 30년 넘게 이주대책은커녕 개발 제한에 묶여 있던 주민들은 가동기간 연장에 합의해주고서야 겨우 일종의 ‘합의금’을 받아 마을을 떠난 셈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남고 싶어가 남은 게 아이요. 집을 팔라꼬 캐도 안 팔리니까 몬 나가는 거지.” 한씨 할아버지는 오히려 재가동 문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반복된 일이라며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 “1호기는 퍼뜩 멈춰세우믄 좋겠다만, 그보다도 지금 동네 사람들은 이사 나간 뒤 묵고 살 길이 더 걱정이라.”

“남아 있는 사람도 집이 안 팔려 못 나가는 것”

정기검사 기간 중 멈춰 있던 고리 1호기의 재가동이 승인된 것은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정기검사에서 시설성능분야 81개 항목을 검사한 결과, 기술기준을 만족하는 것을 확인해 재가동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날부터 고리 1호기는 재가동에 들어갔다. 한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묵묵히 생업을 계속할 뿐이었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도 몇 년 됐지? 세월호도 지금 얘기가 쑥 들어가는데, 고리 1호기 문제야 더 칼 것도 없지.” 또 다른 주민 김종석씨(63)는 그나마 세월호 사고와 지방선거 때문에 고리원전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공약의 강도에 차이는 있지만 여야의 부산시장, 기장군수 후보들이 고리 1호기 폐로를 공언한 가운데 정작 인근 주민들의 반응이 이처럼 냉담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부터 고리원전 갖고 말도 많고 공약도 많았지만 자세히 들다(들여다) 보소. 부산시장이 돼도 원전을 세우니 마니 하는 데는 아무 결정권이 없다 카이끼네.” 김씨의 말대로 지자체장의 권한으로는 원전 가동에 관한 원안위의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보다도 원전의 위험성에 민감한 지역주민들이지만 정부와 지자체에 대해 불신이 높은 데는 정책적인 문제가 깔려 있었다. 지난 5월 2일 국화를 통과한 ‘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에 따라 방사능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은 기존 8~10㎞에서 최대 30㎞까지 확대됐다. 피해가 집중될 반경 3~5㎞ 안에는 예방적 보호조치구역이 새로 지정돼 긴급한 사고 시 주민들에 대한 보호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개정안 내용 자체에 대해 주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의 불만은 없다. 다만 주민 대피와 같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기구가 여전히 서울에 있는 원안위인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반대로 중장기적인 주민 보호대책을 수립하는 역할은 지자체에 맡겨져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국제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는 ‘방사능 방재계획 2013: 한국은 준비되지 않았다’라는 보고서에서 이에 대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업무 분담”이라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또 “사업자인 한수원은 방호장구류 등을 원전 반경 10㎞ 내 주민에게 배포하겠다고 했는데, 규제자인 원안위나 각 지자체 담당부서와의 협의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며 행정기관들 사이의 소통의 문제도 꼬집었다. 모두 2012년 고리 1호기 전원 완전상실 사고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부산시장이 돼도 아무 결정권 없어

원안위의 발표처럼 고리 1호기가 정기검사에서 운전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세월호 사고로 한국 사회 전반에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탓에 과도한 문제제기가 잇따르는 것은 아닐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다음은 고리일 수 있다”는 경고를 했던 그린피스의 분석은 다르다. 원자력산업계에서는 확률론적 안전성평가(PSA)를 흔히 쓰고 있고, 이 평가방식에 따르면 노심용융과 같은 심각한 대형사고는 최저 약 10만분의 1의 확률로 나타날 정도로 지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원자력전문가 고든 톰슨 박사에 따르면 실제 사고 확률은 약 2900분의 1로 높아진다. 이런 분석들을 종합하면 약 50년에 한 번꼴로 고리원전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리 1호기가 현재 확보한 연장 가동수명 40년에 한 번 더 수명을 연장할 경우 도달하는 그 50년이다.

2012년 7월 부산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재가동 여부에 대한 심의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열려 관계자들이 회의실 앞을 지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한국의 원전사고 내용을 분석해도 고리 1호기의 위험성은 결코 낮지 않다. 지난해 기준 최근 10년간 한국에서 발생한 원전사고 및 고장 173건 가운데 사람의 실수로 발생한 건수는 34건으로 20%에 달했다.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부품 1만396개가 전국의 원전에 공급된 점을 감안하면 인적 요인에 의한 사고 발생 확률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고리 1호기의 경우 지난해 7월에는 직원의 조작 실수로 비상디젤발전기 전체가 운전불능 상태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진 데 이어, 11월엔 2차 계통의 여자변압기 케이블 접속부 손상으로 원자로가 자동정지되기도 했다. 2012년 2월의 전원 완전상실 사태 뒤에도 인적 요인과 부품 문제와 관련된 안전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다고 보기 어려운 일들이 계속 반복된 것이다.

고리 1호기의 노후문제는 1호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리원전의 전체 원자로가 현재 가동 중인 6기를 비롯, 향후 가동될 4기를 합하면 최대 10기까지 이를 것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불안을 자아내는 이유다. 남쪽으로 고리원전을 끼고 북쪽으로는 경주 월성원전을 두고 있는 울산시민들의 불안도 부산에 못지않다.

생활공동체 와해, 근본대책 세워줘야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를 마주보고 있는 신리마을, 행정구역 상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는 길천마을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서생면 방면으로는 현재 가동 중인 신고리 1·2호기에 더해, 3·4호기가 올해 안에 준공을 마치면 5·6호기가 이어서 건설될 예정이다. 향후 몇년간은 공사가 이어질 상황이라 장안읍에 비해 건설차량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원전부지 철조망 내에 속속 지어지고 있는 발전시설과는 달리 신리마을의 풍경은 개발제한에 묶여 낡은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 신리마을 주민들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마을 전체의 집단이주에 합의했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마을을 떠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1970년대 고리원전 건설 당시 한 차례 이주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원전 신규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 높았다. 신고리 1호기가 들어서기 전부터 신규 건설을 반대해 왔던 주민들이지만 결국 5·6호기 건설승인이 떨어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본 뒤 마을을 떠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수십년 넘게 싸워온 사람들이 마을에 수두룩빽빽하다. 근데도 인자는 ‘고마 딴 데 가삐자’ 그란다. (싸우는 데도) 질린 기라.” 이학윤씨(67)는 이주는 해도 그 후의 살 길은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한수원이 생업 보상액 3년치만 준다는데 그 뒤로는 우짤랑가 막막하지.”

낙후된 주택들과는 대비되는 번듯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지만 이용하는 주민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잔디축구장 1면에다 테니스 코트 등 8면을 갖춘 서생복지센터 체육공원이 문을 열었지만 고령층이 대부분인 어촌에서 이 시설을 이용할 만한 주민을 찾기는 어려웠다. “예전에 서생면 주민협의회인가 하는 듣도 보도 몬한 단체에서 신고리 5·6호기 ‘자율유치’를 신청해야 380억원을 받는다고 마을 의견은 무시하고 신청해쌓디만 울주군하고 한수원에서는 좋다고 ‘오냐’ 하지.” 지원금 혜택을 기대하는 일부 주민들 때문에 울주군 내의 다른 면은 물론이고 서생면 안에서도 원전과 인접한 마을과 다른 마을 사이에 갈등이 조장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수준 사고 땐 343만명 직접 영향

새로 개정된 원자력방호·방재법에 따라 확대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는 부산과 울산, 경남 양산시 대부분이 포함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예로 볼 때 통상적인 대규모 원전사고의 피해는 이 반경 30㎞ 안의 구역에 집중된다. 사고 발생 시 뿜어져 나오는 대량의 기체 및 미립자 형태의 방사성 동위원소 중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넵투늄·플루토늄 등은 반경 30㎞ 내에 집중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의 ‘방사능 방재 계획’ 보고서 중 한국 고리원전에서 후쿠시마 수준의 사고가 일어날 것을 시뮬레이션한 내용을 보면, 비상계획구역 안에서 사고 영향을 받게 될 인원만 해도 343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고리 1호기에서 직선거리로 25㎞ 떨어진 부산시청과 24.5㎞ 떨어진 울산시청, 23㎞ 떨어진 양산시청은 물론 부산의 도심 서면과 남포동 일대, 해운대와 광안리, 울산 현대중공업 등이 모두 이 범위 안에 있다. 반면 방사능 침투를 막는 긴급 방호약품은 약 19만명분만 구비돼 있는 실정이다. 벨기에가 반경 20㎞ 내 주민 전원에게 방호약품을 사전배포한 것과는 비교된다.

세계 산업항구 가운데 다섯 번째 규모인 부산의 항구가 전면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약 31조원에 달하는 수출입 물량이 그 자리에 묶인다. 전국의 유통망에 극심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방사능 오염 피해 역시 부산·울산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된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누출된 만큼의 방사능이 고리에서 누출된다면 남한 면적의 약 11.6%에 해당하는 지역이 제염작업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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