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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式 영업 멀리하고 무조건 수익 추구 … 현지화 실패

HSBC 이어 씨티·SC은행… 실적악화로 잇단 구조조정

트렌드·판매채널 다변화 실패… 외국 생보사도 점유율 3%P 뚝

지난 2004년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하며 한국 시장에 진출하자 국내 은행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을 보였다. 선진금융기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와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선진금융기법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고 점유율은 나날이 축소됐다. 대신 수익악화 수렁에 빠질 때마다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인력과 지점규모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난달 29일, 한국씨티은행은 희망퇴직을 공식 공고하고 오는 13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지난달 19일 희망퇴직 관련 기준과 대상을 노조에 통보한 지 한 달도 안돼 대규모 명퇴가 현실화하는 셈이다.

노조는 2일 "희망퇴직이 문제 있다"며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은 10일 심리할 예정이지만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씨티뿐만 아니다. HSBC는 소매금융에서 철수하면서 사실상 한국 사업 확장을 포기했고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지난 2∼3년 동안 살을 에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데 이어 조만간 자회사들을 일본계 금융사에 넘길 예정이다.

외국계 금융사 진출이 가장 활발한 생명보험업계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영업 중인 9개 외국계 생보사의 시장점유율을 파악해본 결과 3년 사이 3%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웬만한 중형 생보사의 점유율이 3%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보험사 1개가 사라질 정도로 사세가 위축된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이처럼 한국 금융시장에서 유독 헤매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금융시장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한국 시장 특유의 특성을 담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수익만 추구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현지화 실패'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계 은행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이 은행들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란 게 있었는데 실제 영업에서는 국내 은행을 앞설 만한 부분들이 없었다"며 "오히려 국내 은행 특유의 스킨십 영업을 멀리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시도하지 못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시장 특유의 대면 영업 대신 이익 중심의 합리성만을 추구한 채 충성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라는 얘기다. 특히 기업 고객들을 멀리 보면서 키우지 못한 채 부실 채권 처리에만 급급한 것은 고객을 잃어버리는 부메랑으로 다가왔다.

◇현지화 실패…외국계은행 위축은 당연한 결과=한국 시장에서 국내 시중은행들과 의미 있는 경쟁을 하고 있는 외국계은행은 씨티은행·SC은행·HSBC은행 등 3곳 정도다.

이들 은행은 혹한기를 거치고 있다. HSBC은행은 이미 소매금융에서 철수했고 씨티은행과 SC은행은 강력한 인력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유는 다양하다. 금융 환경이 온라인 점포로 이동하는 추세에 발 빠르게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의 구조조정 작업이 오히려 맞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하지만 이면에는 실적악화를 견디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2009년 각각 4,326억원, 3,113억원을 기록했던 SC은행과 씨티은행의 당기순익은 지난해 말 1,779억원, 733억원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인건비가 전체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할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문제는 실적악화의 배경이다. 이들 은행은 선진금융의 대명사로 인식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씨티은행과 SC은행은 소매금융과 주택담보대출에 주력해왔다. 소매금융의 경우 1금융권에서의 신용대출이 한계에 다다른 고객을 주된 타깃으로 잡았다. 선진금융기법은 오간 데 없고 '이삭줍기 영업'만 남은 것이다. 금리가 떨어지자 주담대에서의 경쟁력도 후퇴했다. 안정적인 자산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대기업금융에서 활로를 찾았지만 외국계은행은 불가능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만약 소매금융에만 주력하겠다고 하면 국내 영업의 특징인 스킨십 영업이나 지인 영업 등에 대한 특화전략이 필요했다"면서 "그러나 한국 시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요직에 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비용 줄이기에만 골몰했지 새로운 시도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현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외국 생보사 3년 사이 점유율 대폭 하락…글로벌 기준 고집이 패착=생보업계에서도 외국계 금융사는 찬바람을 맞고 있다.

생보업계에 따르면 2013년 말 현재 9개 외국계 생보사의 시장점유율(월납초회보험료 기준)은 14.9%를 기록했다. 개별사로 보면 메트라이프생명(4.0%)이 유일하게 4%대 점유율을 기록했고 ING·라이나생명(2.8%), 알리안츠생명(2.1%), AIA생명(1.8%), 푸르덴셜생명(1.0%), PCA생명(0.9%), ACE생명(0.4%), BNP카디프생명(0.04%) 등의 순이었다.

외국계 생보사의 이런 점유율 하락은 급변하는 상품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데다 판매채널 다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생보사들은 종신보험 같은 보장성상품과 변액보험 등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최근 장기 저금리가 고착화되면서 저축성 상품으로 소비자 수요가 몰리고 있다.

한 외국계 생보사 관계자는 "외국계 생보사는 글로벌그룹의 가이드라인을 적용 받기 때문에 국내 생보사처럼 고이율 보장성보험을 취급하기 어렵다"며 "특히 2012년 발생한 변액보험 수익률 파동 이후 변액보험 인기도 줄어 외국계만의 장점이 희석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생보사들의 판매채널이 대면채널에 집중돼 있는 것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대면채널과 텔레마케팅(TM), 방카슈랑스, 보험판매대리점(GA) 등으로 판매채널을 다각화한 국내 생보사와 달리 외국계 생보사들은 대면채널 위주로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 텔레마케팅(TM)에 특화된 라이나생명과 홈쇼핑 비중이 높은 AIA생명 등은 지난 3년간 유일하게 점유율이 소폭이나마 상승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대형사는 자체 설계사조직만으로도 강력한 영업에 나설 수 있는 데 반해 중소형사들은 방카슈랑스 등과 특정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며 "외국계는 방카슈랑스나 GA 활용 비중이 낮아 외형확장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해욱기자 spooky@sed.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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