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손교수의 숙제를 풀려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집에 있을땐 유투브강연을 찾아본다.
처음에는 양자가 도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양자가 도약하는것이 아니라 도약하는것처럼 우리에게 보여지는것이고
양자는 항상 존재하지만 그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상태에서만 우리가 인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양자도약이란 현상은 양자가 실제로 특정궤도에서 다른궤도로 도약하는것이 아니라
양자의 상태가 특정한 상태일때만 우리가 인지할 수 있고 그 상태는 어떤 궤도에 존재할 확률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확률과 인지, 인지와 현상(보이는것)은 같은 의미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이 뉴턴역학이 아닌 열역학에 매우 가깝고
프랭크, 맥스웰, 볼쯔만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기존 뉴턴역학이라는 관점과 다른 이론체계(세계관) 없이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뉴턴역학이 추구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지키려는 입장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보어와 하이젠베르커는 수백년동안 이어온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해 염증내지는 반기를 든것으로 봅니다.
보어는 과학자+철학자라면 하이젠베르커는 과학자+정치가라고 봅니다.
즉, 새로운 과학이론을 받아들이 않는 기존 과학계 거장과 신생 과학자가 논쟁과 과학적 업적을 통해 만들어진것이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왜 해석일까?
결국 철학자+과학자+정치가 이세상을 설명할 수 있고 일반인은 그것에 따라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