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100년, 이젠 ‘우리 새 정치’입니다.
3대 100년, 이젠 ‘우리 새 정치’입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서거했을 때, 비로소 백성은 조선이 망했음을 보았다. 망한 조선에 더 이상 왕이 없어도 백성은 ‘우리’가 됐다. 2월 8일 일본 유학생들의 독립선언과 3월 1일 한반도에 울려 퍼진 만세는 ‘우리’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리’의 역사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서거했을 때, 비로소 민중은 대한독립이 망했음을 보았다. 해방이라지만 남북의 ‘따로 정부’를 통탄했다. ‘통일 조국’을 향한 미련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념의 세운 장막을 보면서 울었다. 분열된 민족이 ‘우리’에게 젖을 주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사망했을 때, 비로소 민중은 군부독재 왜놈정치가 끝났음을 보았다. 12월 12일 ‘신군부’ 쿠데타와 이듬해 5월 권력찬탈을 보고 ‘우리’는 거침없이 항쟁에 나섰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5‧18 광주 항쟁은 ‘우리’에게 성장의 자양분을 주었다.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비로소 민초는 새 정치 태동을 보았다. 그 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잃으며 새 정치 탄생을 예고한 것이다. 한 세대가 떠나면서 다음 세대에게 개혁과 희망을 주었다. 바로 안철수와 새 정치다. ‘우리’는 희망을 보면서 개혁을 다짐했다.
세대를 보낼 때마다 우린 ‘창조’를 만들었다. 한 세대는 ‘만세’를, 다음 세대는 ‘건국’을, 또 다음 세대는 ‘민주’를 일궈냈다. 세대마다 이처럼 ‘창조’를 일궈낸 나라는 없다. 앞으로의 한 세대는 성숙한 ‘우리’로 ‘새 정치’를 일궈낼 것이다. 활짝 핀 무궁화 길을 대한민국과 함께 걸을 것이다.
한 세대 30년. 함께 살면서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비슷한 연령층 사람들이 한 세대다. 우리는 삼대 백년을 거치며, 백성은 민중으로, 민중은 민초로 거듭났고, 공동체 ‘우리’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성숙한 ‘우리’에 ‘위장한 남’이 끼어들었다. 이들은 공동체 ‘우리’의 희망과 개혁을 거부한다.
‘새 정치’는 지난 3월 사분오열의 민주당을 안았다. 구 정치와 기득권에 빠진 집단을 품에 안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세대와 역사를 함께 해야 했다. 그렇게 넉 달. 새 정치는 토사구팽 당했다. 사분오열이 ‘새 정치’를 가로막은 것이다. 그럼에도 새 정치는 시대가 부른다.
7‧30 참패는 급진세력의 오만에 있음을 경고한다.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포지티브는 버리고 네거티브만 택했다. 이들이 정치에 나섰던 2004년 이래 선거마다 졌다. 이들은 애초부터 ‘위대한 지도자’와 ‘새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안는다.
‘위대한 나라’와 ‘위대한 지도자’는 공동체 ‘우리’가 만든다. 위대함은 ‘우리’에게 있다. ‘새 정치’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현실로 만들 것이고, 거기에 맞춘 ‘새로운 맞춤 지도자’는 ‘고난’으로 만들어진다. 안철수 의원은 칩거하며 ‘우리 새 정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새 정치’
30년마다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고 얻었다. 한 세대가 가면 한 세대가 온다. 모든 세대의 도전, 용기, 헌신을 뛰어넘는 ‘위대한 지도자’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새 정치’는 ‘우리 새 정치’로 다시 시작한다. 삼대 백년의 세월로 성장한 ‘우리’다. ‘우리 새 정치’가 대한민국을 업는다.
젊은이들 이 피(4.19.6 월항쟁) 로써 찿은 민주주의 는 요원 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