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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뉴시스】강신욱 기자 = 30일 중국 상하이 송경령 능원에서 충북 증평 출신 애국지사인 연병환 선생의 유해를 확인한 후손들이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연병환 선생의 유해를 확인해 다음 달 14일 국내로 봉환할 계획이다. 2014.10.30. photo@newsis.com 2014-10-30


30일 상하이서 파묘…내달 14일 국내 봉환 대전현충원 안장
'4형제 독립운동가' 맏형, 서거 88년 만에 고국 땅에 잠든다

【증평=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증평 출신으로 '4형제 독립운동가'의 맏형인 애국지사 연병환(1978~1926) 선생의 유해가 88년 만에 국내로 봉환된다. <뉴시스 10월14일 보도>

국가보훈처는 30일 오전 10시(현지시각) 중국 상하이 송경령 능원에 있는 연병환 선생 묘소를 파묘해 선생의 유해를 확인했다.

이날 파묘 작업에는 보훈처 직원과 선생의 아우이자 증평의 대표적인 애국지사인 연병호 선생의 손자인 연규은(71)씨 가족이 함께 지켜봤다.

유해는 태극기에 덮여 현지 봉안당에 임시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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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씨는 "큰할아버지의 유해를 국내로 모실 수 있어 후손으로서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연병환 선생의 유해를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을 앞둔 다음 달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봉환해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할 계획이다.

증평군 관계자는 "연병환 선생 유해의 국내 봉환 소식에 기쁨을 감출 수 없다"며 "고국 땅에서 영면하시길 군민 모두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연병환 선생 묘지석에는 'YAN PUNG HAN'이란 영문이 표기돼 있고 바로 옆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로 지난해 4월 국내에 유해가 봉환된 박은식(1859~1925) 선생의 묘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연병환 선생 유해는 애초 상하이 정안사 영국인 묘지 303호에 안장됐으나 문화혁명 때 파헤쳐 상하이 송경령 능원 6구역으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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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는 연병환 선생 유해와 함께 미국의 이살음(1892~1966) 선생 유해도 이번에 국내로 봉환·안장한다.
  연병환 선생은 1908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해관(海關)에서 근무하면서 1919년 간도 룽징(龍井) 3·13만세시위운동에서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2개월의 처벌을 받았고 1920년 상하이로 옮겨 대한인거류민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최근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모시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엄항섭의 부인 연미당이 연병환 선생의 친딸로 확인됐다.

연병환·병호·병주·병오 4형제와 자손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해 증평군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ksw64@newsis.com


Who's 1:10000(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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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靜新月最分明  맑고 고요한 초승달이 오늘따라 밝은데...



一片金光萬古淸 한조각 찬란한 달빛 천년만년 푸르러라.



無限世界今夜望 넓디넓은 세상에 오늘밤 달을 바라보며...



百年憂樂幾人情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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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운   교양있는부자  
  • profile
    1:10000(안원장)Best 2014.11.10 00:54
    애국운동을 하신 분들의 정보를 이렇게 많이 알고 계셔서 부럽습니다.
    나라가 애국자의 자손들로 근본을 가지고 성장해야하는데 6.25이후 많은 지식인 들이 친일계 성향 후손들이 나라를 운영하다보니 첫단추를 잘 못 끼운것이 되었나 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님 말씀 처럼 청산을 하려는것보다는 애국지사 후손들을 나라의 인재로 키워주는것도 국가의 정체성을 찾는 바른길이라 봅니다.
  • profile
    1:10000(안원장) 2014.11.08 04:51

    애국지사 국내로 모셔오기....보훈처와 협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라 중국에서 사는 보람이 있네요.

  • ?
    교양있는부자 2014.11.08 14:58

    안 원장님 중국에 계시군요

    애국지사 분들에 대한 소식은 물론  한국 사람들이 중국도 많이 방문하니까   한국인의  생각과

    전혀 다른  중국인의 관습도  많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4형제 분이 독립운동을 하신 집안은 장하성, 장하준 교수의 할아버지 형제 분들이 있고

    또  장하성, 장하준 교수의 아버지  4형제 분들은  1950년 6월 25일에  사변이  일어났을 때

    학도병으로  참가한  명문 애국자 집안인데 

    연병환· 병호· 병주· 병오 4형제 분들과 자손도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니 

      

    그 후손들이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많은 염원으로 축복을 받아    나라의 인재가

     많이 배출 되기를 기원합니다

    국회의원 중에   항일 애국지사의 후손은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님과
    정일형 박사님의 손자인 정호준 의원님이 있습니다

    1, 이종걸 의원님의 할아버지 6형제 분들과 일가들이  전재산까지 바쳐서

      이회영 선생님의 주도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우리나라 최고의  애국자 집안입니다

    " 이회영은 한말의 독립운동가로서
       서전서숙,  신민회,  헤이그밀사,  신흥무관학교, 

    고종의 국외망명,   의열단 등  국외 항일운동의  전반에 관여하였다.

    이회영 집안은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며   아버지 이유승은 이조판서를 지낸 이른바 삼한갑족

    (三韓甲族)이라 불리던 명문가의 후손으로서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형 건영(健榮)·석영(石榮)·

    철영(哲榮)·회영(會榮), 동생 시영, 호영(頀榮)과 함께  6형제가 서울 명동 일대의 전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에 사용하고  가족들까지 독립운동에 직접 투신한 집안으로 유명하다

    1896년 항일의병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풍덕에 인삼농장을 운영하였으나 일본인의 계획적

     약탈로  실패하였고 이상설, 이시영과 함께 을사오적(乙巳五賊) 암살을 모의하기도 하였다.

    만주 용정촌 서전서숙 설립에도 참여하였으며 서울 상동교회 내 상동청년학원 학감으로 근무하면서
    1907년 4월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발족하였으며,   1907년 6월 '헤이그 밀사' 파견을

    주도하였다.

    헤이그 밀사사건 실패 후 국외에 독립기지 마련을 위해 1910년 12월 여섯 형제와 가족, 노비 40여명도

    포함하여  일가족   전체가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이 때 여섯 형제가  명동 일대의 전재산 (  서울 명동 일대의 토지가  이회영 가문의

    소유였다고 하니     지금의 시가로 1평당 1억원이 넘으니까    총액은 3조원이  넘을 것임, 

    2013 기준 )을  팔아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운용했다.

     
    1911년 4월 이주동포들의 정착과 농업지도를 위한  '경학사'를 조직하는 한편,

    1911년 5월  광복군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 후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청나라 실권자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를 직접 만나 대한제국의 항일운동에 대한

    협조를 받아내고    합니하(광화)에   대한독립군 군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건립하였다.

    고종의 국외망명을 계획하였으나 1918년 1월 고종의 급사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1919년 베이징[北京]으로, 다시 상하이[上海]로 가는 등

    각지를 전전하며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다 ㅡ 두산백과 인용

    약관 20세부터 신지식을 받아들여 평민적 사고(思考)와 행동으로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이회영 선생님을 역사는 독립운동가는 물론  위대한 사상가이며 혁명가로 기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우당기념관이 1990년 세워졌고, 2001년에는 서울 종로구

    신교동으로 옮겼다.    그의 묘소는 국립현충원에 모셔졌으며,   

    2000년 중국 정부는 우당 이회영 선생님에게  항일혁명열사 증서를 수여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추가 정보는 옆의 주소를 찾아 필독하시기를 권합니다        http://blog.daum.net/donaldyu/6793

    성재 이시영 선생님은 평남 관찰사로 나갔다가 1908년 한성(漢城)재판소장
    ·법부 민사국장(民事局長)· 고등법원 판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자  형 이회영 선생님과 뜻을 같이 하고자 관직을 버리고

    만주로 망명하여 류허현[柳河縣]에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뒤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양성에 힘쓰다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법무총장·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

    그뒤 대한독립촉성회(大韓獨立促成會) 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제헌국회에서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초기 정부에 참여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견제와   실정(失政)으로 뜻을 펴지 못하다가  

     

     1951년 '거창 양민학살 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의 실정(失政)과  부패를 성토하는〈국민에게 고한다〉라는 성명서를

    국회에  전달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대종교(大倧敎) 활동에도 힘써 

    사교교질(司敎敎秩)·원로원장 등을 맡았으며, 저서로는 《감시만어(感時漫語)》가 있다. ㅡ 두산백과

    # #  박성수 전 성균관대 교수님은  <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이라는 책을 2003년에 펴냈는데

    과거시험( = 행정고시)에서     장원급제( = 수석합격)를 하고  관리로서 징세서장을  하시던

    나철 선생님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횡포가 더욱 심하게 되자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 대종교>를 세우셨는데   

    대종교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정신교육을 받은  신도들이

    이회영 선생님 6형제 분들이 전재산을 들여서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후  
    서일, 김좌진 장군님의 <청산리 전투>에서  주력군으로  활동한 사실은  

    대종교의 신도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된다

     

    아래의 주소에서 추가 정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9&contents_id=8687&category_type=series

     

    또 업적에 비해서 덜 알려진 분으로   북로군정서 총재와 대한독립단 총재를 역임하신

    서일 독립운동가에 대한 추가 정보를  아래의 주소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9&contents_id=7350&category_type=series 

     

     2, 정호준 의원님의 할아버지인   정일형 박사님은 1919년 2월 광성학교 2학년 재학시

         3·1독립운동 계획이 알려지자,

    동교 기숙사 지하실에서  김재호 등 10여명의 상급생과 함께  대소(大小) 태극기  5,000여 매를

    제작하여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인 신홍식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배부하여 주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일제 평양경찰서에

    피체되었으나   미성년자(당시 16세)로 7일 후에 출감하였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2학년때 미국인 핫취 교수의 "한국의 여건상 기술· 자본· 원료 및

    시장확보 등이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한국의 독립은 부당하다"는 친일발언에 대하여
    정일형, 이창희 등 5∼6명의 학생들이 합세하여  미국인 교수를 구타하므로써 퇴학을 당할 뻔

     하였으나  조병옥(趙炳玉) 교수의 도움  덕분에 1년간 정학(停學)으로 경감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29년 도미(渡美)한 후 신학(神學)을 전공하면서 재미유학생회(在美留學生會) 조직에 참여하여
    외교부장으로 피선되어 독립정신 고취와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35년 11월 미국 뜨류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그후 평양에서 목회(牧會)를 통한
    독립정신 보급과 농촌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1937년 10월 평양지방 감리교 기독청년연합회

    회장으로  피선되어 활동하다가   안창호의 특별강연회를 개최한 것을 빌미로 일경에 피체되어
    소위 유언비어 유포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개월간 구류되었다가 출감하였다.

    그러나 다시 흥사단 사건으로 피체되어 투옥되었으며 연이어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운동으로
    피체되어 기소유예를 받고 출옥하였다.
    또한 1940년에는 일제의 창씨개명(創氏改名) 강제에 저항하다가 수차례에 걸쳐 구금당하였다

    1942년 1월 서울에서 이동욱(李東旭)·안흥국(安興國)·한익수(韓益洙)와 함께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는 등 국제정세를 논의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1943년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항고하여   

    1943년 11월 29일 평양복심법원을 거쳐    1944년 3월 30일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미결기간중 2년 3개월간 수감되었다가 광복이 되어 출옥함.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ㅡ  ㅡ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인용.
       
    추가 정보는 아래의 주소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4112495

    3, 이종걸 의원님과 정호준 의원님처럼 근본이 좋은 후손들이 나라의 인재로 성장하도록
    성원하는 것은     항일애국지사 님들에 대한   우리들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일애국지사 님들의 고귀한 뜻이 반짝반짝 빛나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 profile
    1:10000(안원장) 2014.11.10 00:54
    애국운동을 하신 분들의 정보를 이렇게 많이 알고 계셔서 부럽습니다.
    나라가 애국자의 자손들로 근본을 가지고 성장해야하는데 6.25이후 많은 지식인 들이 친일계 성향 후손들이 나라를 운영하다보니 첫단추를 잘 못 끼운것이 되었나 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님 말씀 처럼 청산을 하려는것보다는 애국지사 후손들을 나라의 인재로 키워주는것도 국가의 정체성을 찾는 바른길이라 봅니다.
  • ?
    다산제자 2014.11.10 06:54
    안원장님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 ?
    교양있는부자 2014.11.15 09:37

    전재산 팔아 독립운동 투신한 이회영과 형제들

    기사입력 2014-11-14 15:44

    덕수궁 중명전서 '난잎으로 칼을 얻다' 기획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우당 이회영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여섯 형제와 함께 전 재산을 처분하고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망명한다. 이들 형제는 그곳에서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어 독립투쟁을 전개한다.
    베이징 시절 우당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묵란(墨蘭)을 내다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형제 중 이회영은 1932년 11월17일 뤼순 감옥에서 고문 끝에 순국했다.
    여섯 형제 중 성재 이시영만이 유일하게 해방된 조국 땅을 밟게 된다.

    우당기념사업회를 비롯해 우당 및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우당과 그 형제들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
    '난잎으로 칼을 얻다 - 우당 이회영과 6형제'를 을사늑약 체결일이자 우당 순국일인 오는 17일부터
    내년 3·1절까지 덕수궁 중명전에서 개최한다
    .

    이만열 전시위원장은 이번 전시가 "신분, 재산, 목숨, 자식, 우정, 눈물, 재능, 배고픔마저
    조국 독립을 위해 바친 우당 이회영과 6형제들의 삶을 되새기고자 마련됐다"고 말했다
    .

    이 자리에는 우당의 묵란 5점과 벼루가 공개된다. 그의 묵란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이어 한국식 묵란 화풍의 한 전형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전시위원회 측은 덧붙였다.

    우당의 아내인 이은숙의 회고록 '서간도시종기'(西間島始終記) 육필 원고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원고는 국내외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흐름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고증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이날 오후 6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전시회 개막식이 열린다. 개막식에는 우당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이종걸 국회의원(새정치연합·경기 안양시 만안구)을 비롯해 정치권 등 각계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

    이에 앞서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중구에 있는 상동교회에서는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82주기

    추모식과  장학금 수여식이 열린다.

    추모식에서는 국가보훈처장과 광복회장, 새정치민주연합 정세균 의원이  추모사를 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 상해와 북경 등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벌인 이회영 선생은 1932년 11월 주만주일본군사령관
    암살을 목적으로 상해에서 대련으로 향하던 도중 일본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 끝에 11월 17일 옥사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 내일신문 인용 )

    => 독립운동을 하려고 서간도에 갈  때 여섯 형제가  명동 일대의 전재산 (  서울 명동 일대의

    토지가  이회영 가문의 소유였다고 하니 지금의 시가로 1평당 1억원이 넘으니까    총액은

    3조원이  넘을 것임,  2013 기준 )을  팔아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운용했습니다.

     

    1, 한국은 광복 후 미군정 3년을 거치고 정부수립을 할 때에 외세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 보다   친일 앞잡이들이  권력층에 많이 진출하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 보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우가 미흡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독립운동 하신 분들의 고귀한 뜻을 많이 전파하는 것은 물론 그 후손들을

    지원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을사오적이라는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이  고종 임금도 참석하지 않은 곳에서

    일제늑약에  앞장서서 찬성한 최초의 친일파이니까

    이들이 일제강점기에 취득한  재산을 몰수하여       가칭 독립유공자지원기금을 마련한다면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에게 의미있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유공자의 직계 후손 모두에 대해서  4대손(고손)까지  서울 기준으로 전용면적 85

    평방미터의  주공아파트를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또 직계 후손 모두에 대해서 4대손까지 대학교 등록금을 면제하여 애국자의 후손을 양성해야

    더욱 바른 나라가 된다고 봅니다

     

    mizzily 님이 네이버 지식인에 답변한 내용을 보면

    질문1. 독립유공자의 유족인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외손자녀인 저희들이 승계가 가능한지요.

              가능합니다.  질문자의 형제들 중 한명이 수권유족이 됩니다.

              다만   연금의 경우 외할아버님이 1945.8.14.이전에 사망하셨다면 승계되나

     

              그 이후에 사망하신 것이라면 손자녀에게 연금이 승계되지 않습니다.

              대신 2005년도부터 가계지원비를 월 25만원씩 지급하고 있습니다. 

     

    매월 25만원씩 지급하는 가계지원비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하는 금액 보다 적습니다        

    이는 권력층에 있는 친일 앞잡이의 후손들이  계속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의도적으로

    애국자의 후손을 홀대하고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애국자의 후손을 돌보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봅니다

     

    2, 국가보훈처 예산이  경미한 사유로 국가유공자를 양산한 까닭에 낭비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병역의무 이행으로 군대 생활을 하면서 1) 체육대회에서 다친 경우  2)  경미한 사고

    또는 경미한 질병으로 비수술 치료 후에 전역하여 평상시처럼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잘 하는데 평생토록  유공자로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과잉보상이고 과잉급부라고  봅니다

     

    따라서  위의 1) 체육대회에서 다친 경우  2)  경미한 사고  또는 경미한 질병으로 비수술

    치료 후에 전역하여  국가유공자가 된 사람은 2년마다  재심사를 하여   평상시처럼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잘 한다면  유공자로서의  연금지급은 배제하고   

    본인의 취업 우선권만 갖도록  자격을 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거기서 절약된 연금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지원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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