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7. 온라인 다이아몬드에 게재된 것으로, 필자 타오카 슌지(田岡俊次 군사평론가)은 일본 ’아사히‘신문의 전 편집위원(방위담당)이며, 미국 조지타운대학 전략문제연구소(CSIS)연구원 겸 동 대학 강사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지인 성재상 님이 번역하여 보내온 글이다.
필자 타오카 tbs지는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전투부대는 겨우 800명으로 억지력으로서의 필요론의 주장은 오류다. 이는 미국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는 비굴한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내용 중에는 “1981년 4월에 미 해군의 원자력 잠수함 ‘G. 워싱턴’이 동중국해에서 일본 화물선 ‘닛쇼 마루’에 충돌하여 침몰시키고, 구조나 통보도 하지 않고 도주해서, 승무원 15명중 2명이 사망한 사건이나, 2001년 ‘하와이’의 ‘오아후’섬 해역에서의 미 원자력 잠수함 ‘그린 뷔루’가 ‘우와지마’ 수산 고교의 연습선 ‘에히메 마루’에 충돌, 침몰시키고, 9명이 사망한 사건에서는, 어느 것도 미 해군이 군법회의를 개최하지 않고, 형사적 제재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리에 어긋나는 예가 있음에도 일-미 동맹 문제로는 발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원자력 잠수함과 충돌 사고에 대한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새겨 볼 만한 내용이라고 보여졌다.
<번역문>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전투부대는 겨우 800명
‘억지력으로서의 필요론’의 오류
지난 11월 16일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미 해병대 ‘후텐마’(普天間)비행장을 현내의 ‘헤노코’(邊野古)로 이전(移轉또는 移設)하는데 반대하는 ‘오나가 타케시’씨가 당선됐다. 이것으로 현지사와 함께 현지의 ‘나고’(名護)시 시장도 이전 반대파가 점하게 됐다. 이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조용히 이전계획을 추진할 것이라 하며, 그 이유로 ‘헤노코’이전이 “억지력으로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는 미 해병대의 역할을 자세히 검증하면 억지력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지사도 시장도 이전 반대파
11월 16일의 오키나와 지사 선거에서는, 미 해병대의 ‘후텐마’비행장의 폐쇄∙ 철거와 아울러, 현내 이전 포기를 요구하는 전 ‘나하’(那覇)시장 ‘오나가 타케시’씨가 현직의 ‘나카이마 히로카즈’지사에게 투표총수의 14퍼센트에 해당하는 10만표 가까운 큰 표 차로 당선했으며, ‘오나가’당선자는 ‘나카이마’씨가 2013.12.27에 실시한 ‘헤노코’연안의 매립허가를 철회하는 등, 모든 수단을 구사해서, 새로운 기지건설에 반대할 뜻을 표명했다.
정부는 ‘일단 현 지사가 승인한 것을 후임자가 철회해서는 안된다하고, 해저지반의 '보오링'조사 등을 '조용히' 진행할 계획이지만, 금년 1월 19일에는 현지의 ’나고‘시에서도 기지 이전 반대파인 ’이나미네 스스무‘시장이 큰 표 차로 재선되어, 어항(漁港)내에 마련할 매립작업용 부지를 대여하지 않겠다는 등의 저항을 시장 권한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에 지사가 가세(加勢)하면 공사 추진은 난항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전에는 설계1년, 매립 등의 건설에 5년, 시설정비에 3년 등, 합계 9년 반이 소요되며, 총경비는 1조 엔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36해병항공군(群)이 주둔하고 있는 宣野灣市의 ‘후텐마’비행장은 2천7백미터의 활주로를 갖고, MV22B(오스프레이) 24대, 대형 수송헤리콥터 CH53E 4대, 공격 헤리 AHIW 5대, 지휘∙연락용 헤리 UHIN 4대, 연락기 UC35 3대, 동 UC12 1대가 배치되어있는 것 같다. ‘나하’에서 약 10키로의 가까운 거리에 있어, 비행장의 주위는 주택지로 발전해서 소음에 대한 고충이 많고, 2004.8.13에는 대형 헤리 CH53D가 인접한 오키나와 국제대학 구내에 추락하여 불타버렸다. 여름 휴가 중이었음으로 민간인 사상자는 없었으나, 탑승원 3명이 부상했다. 또한 宣野灣市가 기지에 의해 동서로 분단되어있음으로 소방, 구급활동 등에 지장이 있다한다.
또한 기지를 ‘헤노코’에 이전하면, 사고에 의한 민가(民家)피해나 소음문제는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나, 미군에 의한 점령, 강제적 용지(用地)수용, 미군인의 범죄 등으로 70년 가까이 고통을 받고, 굴욕감을 간직해온 오키나와 현민들의 다수가, 새로운 기지 건설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6년 4월 ‘하시모토 료-타로’수상과 ‘W. 몬데일’ 주일 미국대사가 ‘후텐마’기지 이전에 합의한지 벌써 18여년.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아직 착공도 못하고, 정부의 목에 박힌 뼈처럼 되어있는 것은, 본래 이 계획이 무리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그 동안 일본의 재정 상태는 악화되고, 정부의 총 채무 잔고는 1,197조엔, 정부가 가진 금융자산을 뺀 순 채무도 673조엔(GDP의 약 138퍼센트)에 달했다. 이런 재정위기 가운데, 지역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기지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 정책인지는 의심스럽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의 실제 역할
정부는 이 기지 계획수행이 ‘억지력 유지에 불가결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가 실제로 ‘억지력’이 되는가 여부는 검증이 필요하다. 일본에는 2013년말에 미 해병대원 1만5천9백여명이 있고, 그 중 약 3,200명은 ‘이와쿠니’(야마구치 현)의 제12해병항공군(群)과 ‘후지’연습장등에 근무하고 있음으로 , 오키나와에는 1만 7천명정도다. 오키나와에는 ‘제3해병원정군(遠征軍)사령부’밑에 ‘제3해병사단’ ‘제1해병항공단’ ‘제3 해병병참군(群)’등이 있게 되어있어, 보기에는 상당한 전력(戰力)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투부대는 제31해병 원정대 뿐이다. 이것은 보병 1개대대(약 800명)와 155미리 견인포(牽引砲)(自走式이 아님) 6문, 수륙양용 장갑차(25미리 기관포 또는 대전차미사일 ‘TOW'장비)6대, 수륙양용 병력 수송차 15대등을 가진 ’대대(大隊)상륙팀‘(전차는 없음), 그리고 AV8B ’하리야-11’공격기 6대, MV22B(오스프레이)12대, 대형헤리 CH53E 8대, 공격헤리 AHIW 4대, 지휘∙ 연락헤리 UHIN 3대를 가진 혼성 항공부대, 그들의 보급∙지원부대로 이루어져, 인원 약 2,100명이다. 이 보병대대는 오키나와 상주(常駐)가 아니고, 미국 본토의 제1,제2해병사단등으로부터 6개월 교대로 파견되고 있다. ‘후텐마’의 제3해병항공군(群)은 이 부대에 항공기를 차출하는 모(母)부대 역할을 한다. 그 이외의 오키나와 미해병대는 사령부이거나 병참(보급,지원)부대이다. 제31 해병원정대는 ‘사세보’(佐世保)를 모항으로 하는 미 해군의 강습양륙함(强襲揚陸艦)(40,358톤)등 양륙함 4척(이중 상시 출동가능 3척)에 승선해서, 제 7함대의 일부로서 서태평양, 인도양을 순항하고 호주에 자주 기항한다.
보병이 불과 800명 정도의 경장비 부대만으로는 전쟁을 할 수 없다. 상륙작전의 선봉(先鋒)이 되어 해안이나 항구를 확보하는 것이 제1 임무이지만, 이것은 바로 후방에 제1, 제2 해병사단이나 육군의 사단 병력을 태운 대선단(大船團)이 따라오는 경우의 이야기이고, 대함(對艦)미사일이 발달, 보급된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상륙작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임무는 해외에서의 전란(戰亂), 폭동, 천재(天災)등의 경우에 재류 미국인을 구출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공항이나 항구를 확보하고, 폭도 등의 침입을 막고, 미국인들을 도심 등으로 부터 공항이나 항만에 장갑차나 헬리콥터로 수송하고, 수송기나 선박에 태우는 것이라면 보병 1개 대대, 포 6문, 각종 장갑차 합계 21대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료품, 연료, 탄약 등은 15일분을 준비하고 있다.
미 해병대는 1997년의 동유럽 ‘알바니아’에서의 소란, 그해 5월의 서아프리카 ‘시에라레온‘의 내전등에서 미국인들 구출에 출동하고, 2010년 1월의 ’헤이티‘지진에도 출동했으나 이때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숙박한 고급 호텔에서 구원활동을 했다.
미국인 피해자가 적은 재난에도 출동하고 있다. 2004년의 인도네시아 스마트라섬 해안 지진, 2013년의 필리핀 레이테섬의 태풍등에서의 미 해병대의 행동은 민속했다. 2008년 중국 四川省의 대지진때에는 미군은 다른 나라에 앞서 미공군의 C17대형 수송기로 구호물자를 成都에 수송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때의 ‘동무 작전’에서는 일본인들이 미 해병대의 활동에 감사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 캐리포니아주 캠프 ‘펜돌톤’으로 부터 교대로 와 있던 제1해병사단의 제 5연대 제2대대가 당시 31MUE의 주력이었다. 그러나 재난시의 구조나 인도적 지원활동은 동맹국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이가 나쁜 나라도 호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임으로, 이런 활동은 당연히 ‘억지력’과는 관계가 없다.
대 북한, 중국 억지에 도움이 될까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는 먼저 북한의 핵미사일을 들 수 있으나, 거기에 대한 억지력은 미군, 한국군의 항공전력, 미해군 항공모함의 탑재기, 잠수함과 해상함에서 발사하는 순항(크루즈)미사일 ‘토마호크’이다. 핵무기를 북한에 대해 사용하면 풍향(風向)에도 따르겠지만, 한국, 중국, 일본에도 방사성 물질이 내리고, 핵공격에 의한 오염은 북한 붕괴 후에 한국이 북한을 부흥하는데도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없음으로, 미군은 공대지(空對地)미사일이나, GPS유도폭탄 등의 정밀유도무기에 의한 통상(비핵)공격을 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군이 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멸망은 확실하며, 800명 정도의 해병 1개 대대나 ‘오스프레이’와 헤리콥터와 같은 부대는 핵미사일에 대한 억지력으로는 물론 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하더라도, 제31MEU가 첨병(尖兵)이 되고 해병대가 중국연안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대규모의 지상전(地上戰)에 돌입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나 자신이 1996년 ‘후텐마’기지 이전문제가 나왔을 당시, 워싱턴 교외의 해병대 사령부에서 해병대 수뇌와 상황에 관해 대화할 기회가 있어, 내가 “해병대의 중국 상륙 작전은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자, 상대는 “Unthinkable(생각할 수 없다)은 적절한 표현이죠”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해서 내심 놀란 일이 있다.
미국의 억지력은 약 4,700발의 핵탄두(그외에 폐기예정이 약 3,000발)에 추가해서, 세계의 여타 해군들을 모두 합쳐도 당하지 못할 만큼의 절대적 우세를 가진 미 해군과, 질적∙ 양적으로 압도적인 미 항공 전력에 의한 것이며, 해병대의 소부대가 오키나와에 있건, 없건 억지력에는 변화가 없다. 양륙함(揚陸艦)에 탑승해서 인도양, 서태평양을 순시하고, 때로는 이라크에서 싸우기도 한 제31MEU가 오키나와 방위병력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미 양국 정부는 2012년 4월, 오키나와의 해병대원 약 9천명과 그들의 가족을 일본 국외로 이전하고, 일본은 ‘괌’ 등으로의 이전경비 86억달러 중에서 28억달러 한도의 재정지원을 한다는 등의 내용의 공동발표를 한 바 있다. 오키나와를 떠나는 9천명은 ‘괌’과 ‘하와이’로 옮기는 외에 호주 북안(北岸) ‘다-윈’의 교대 배치에 충당되고, 오키나와에는 3천여명이 남을 것 같다. ‘제3해병원정군 사령부’등의 사령부는 오키나와에 남고, 실동(實働)부대인 제31MEU도 오키나와에 잔류한다. 전쟁이나 소란, 천재등의 경우, 미군의 구출활동의 대상이 되는 비전투원(민간인, 군인의 가족 등)은 한국에 22만 명, 중국에 25만 명이 있다한다. 구출에는 초동(初動)이 중요하나, 괌에서 양륙함에 탑승하여 구출을 위해 한국, 중국의 연안까지 가는 데는 약 3천키로가 되고, 20노트 속력으로 3일반이 걸린다.
‘사세보’(佐世保)에서 간다면 서울의 외항 인천이 약 700키로, 중국 ‘샹하이’가 약 800키로 로 1일간의 항해가 된다. ‘사세보’에서 오키나와까지 남하(南下)해서 해병대원과 장비를 싣고 되돌아 북상해오면 시간적으로 별로 이점은 없으나, ‘오스프레이’(항속거리 약 1천키로, 탑승군인 24명)와 대형 헤리 CH53E(항속거리 약 2천키로, 탑승 군인 37명)를 사용해서 인원을 해상에서 태우고, 중장비는 양륙함에 그대로 두면, 괌에서 출동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또한 제 31MEU가 양륙함으로 원양(遠洋)으로 나가버린 경우에도, 남은 ‘오스프레이’12대와 ‘후텐마’에서 ‘이와쿠니’로 옮긴 KC130공중급유겸 수송기 15대로 재외공관을 수비할 정도의 병력은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센카쿠’유사시에 미 해병대의 참가는 기대할 수 없다
동중국해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의 수비와 탈환작전에 미 해병대가 참가하는 것은 우선 기대 할 수 없다. 이 칼럼에서 몇 번이나 언급한바와 같이, 오바마 대통령은 금년 4월 24일, ‘아베’수상과의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에게는 중국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영토문제에서 “특정의 입장은 취하지 않는다”, “중국 봉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표명하였다. ‘센카쿠’열도 중에서 大正島, 久場島는 주일 미군 지위협정에서, 미군의 사격∙폭격의 표적으로 제공되고 있음으로, 미국도 ‘센카쿠’ 열도가 안보조약의 적용 지역’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미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가이드라인)에서는 “착∙상륙을 저지, 배제하는 작전에서 일본 자위대가 'Primary Responsibility'(一義的責任)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어 번역은 이것을 “자위대가 주체적으로 실시한다”고 오역을 했는데, 미군은 아무것도 안 해도 “일의적 책임은 자위대에 있다고 명기(明記)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 있는 문언이다. 현재 행하여지고 있는 가이드라인의 개정협의에서도, ‘일의적 책임’조항을 남기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있다. ‘센카쿠’유사시에 일-미 공동작전의 책정을 자위대가 요구해도 미국이 불응하는 것도 미국의 이해(利害)관계상 당연한 것이며, 국제정치는 주로 이해타산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미국은 일-중이 무력분쟁을 일으키면 그 중간에서 매우 곤란하게 될 것임으로, 쌍방의 화해에 힘써왔다. 11월 10일의 일-중 수뇌회담 전에 발표된 합의문서에서 ‘센카쿠’문제가 사실상 ‘보류’되자, 케리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마음속으로 환영한다”고 말하고, 일-중관계 개선을 요청했다. 일-중의 관계개선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중요하며, 일-중 수뇌회담의 실현을 위해 미국이 노력해온 것은 확실하나, 거기에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가 도움이 되었다고는 생각되지는 않는다.
‘만약 후텐마에서 재차 사고가 일어나면 일-미동맹은 날아가 버릴 것이다’라는 설도 있으나, 현재의 ‘후쿠오카’공항에 가까운 ‘큐슈’대학의 전산센터에 1968년 6월 미 공군의 RF4 정찰기가 추돌한 사고나, 72년9월에 ‘아쓰기’기지에서 이륙한 미 해병대의 RF4 정찰기가 ‘요코하마’시의 주택지에 추락해서 민가 20채를 불태우고, 3명이 사망, 6명이 부상한 사고에도 안보조약은 해소되지 않았다.
1981년 4월에 미해군의 원자력 잠수함 ‘G. 워싱턴’이 동중국해에서 일본 화물선 ‘닛쇼 마루’에 충돌하여 침몰시키고, 구조나 통보도 하지 않고 도주해서, 승무원 15명중 2명이 사망한 사건이나, 2001년 ‘하와이’의 ‘오아후’섬 해역에서의 미 원자력 잠수함 ‘그린 뷔루’가 ‘우와지마’ 수산 고교의 연습선 ‘에히메 마루’에 충돌, 침몰시키고, 9명이 사망한 사건에서는, 어느 것도 미 해군이 군법회의를 개최하지 않고, 형사적 제재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리에 어긋나는 예가 있음에도 일-미 동맹 문제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이런 예들을 보면 ‘후텐마 이전(이설)이 되지 않으면 억지력을 유지할 수 없다’거나 ‘일-미 동맹이 날아가 버린다’등의 설은, 오로지 미국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는 비굴한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번역: 성재상)
(필자 타오카 슌지(田岡俊次)(군사평론가) : 일본 ’아사히‘신문의 전 편집위원(방위담당)이며 미국 조지타운대학 전략문제연구소(CSIS)연구원 겸 동 대학 강사를 역임한바 있음. 이 글은 2014.11.27 . 온라인 다이아몬드에 게재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