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관련 여론조사 결과’ 꼼수 발표를 규탄하며,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포기를 촉구한다!
1. 박근혜 정부는 얼마 전에 국사편찬위원장을 새로 임명했다. 그런데 김정배 신임 국편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 체제와 관련해 국정제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에 벌어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를 우리는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교과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엉터리 책을 검정에서 통과시켰고 따라서 큰 책임을 져야 할 국편의 신임 위원장이 국정제 운운하는 것은 가증스럽기조차 하다. 더 큰 문제는 김정배 위원장의 국정제 발언이 돌출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국편 위원장의 사실상 경질과 보조를 맞추어『조선일보』가 지난 4월 8일 교육부와 새누리당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단독으로 보도한 것은 국편과 보수언론을 내세워 잠잠하던 국정제로의 회귀를 다시 밀어붙이려는 속내 때문이 아닌지 우려된다.
2. 교육부는 2014년 8월에서 10월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역사 교과서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를 시작한 2014년 8월 28일은 공교롭게도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관련 토론회(2014.8.26)를 진행한 직후였다. 교육부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대부분의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회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검정제의 유지를 촉구한 것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학계, 역사교육계,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국정화 추진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교육부가 국정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찾아낸 것이 여론조사라는 꼼수였다. 당연히 교육부는 국정화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3. 여론조사 결과는 작년 말에 이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교육부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그 와중에 여론조사 시행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미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했다고 하고 교육부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미루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 동안 야당은 줄기차게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의 제출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몇 차례나 약속 시한을 어긴 끝에 최근 3월 말까지 보고서를 제출하겠다고 다시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어제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실에 자료를 제공했고『조선일보』가 이를 받아 ‘학부모 56%가 국정화에 찬성하고 있다’는 식의 편법 발표를 했다. 그 동안 국정화에 찬성하는 보수 단체의 보도 자료까지 친절하게 언론에 배포해 주던 교육부가 막대한 국민 혈세 4000만원을 들여 진행한 여론 조사 결과를 여당 의원과 특정 보수언론에 편법으로 제공한 것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의 교육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부처가 이런 꼼수를 벌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4. 여론조사 절차상의 문제와 국정화 찬성을 유도하게끔 설계된 설문문항의 편향성을 새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편향적으로 이루어진 그리고 편법으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조차 과연 국정화 교과서의 필요성을 합리화할만한 수준인지에 대해서만큼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5. 교육부가 그토록 발표하기를 꺼렸던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분석하면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정화를 밀어붙이려는 교육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국정화 교과서에 대한 반대 여론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교 학부모를 포함한 전체 학부모의 국정화 찬성 비율이 56.2%이지만, 국정화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실제로 배우고 있는 당사자인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국정화 교과서(49.2%) 보다는 검정 교과서(49.4%)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주고 있다. 자신의 자녀들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의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교과서로 매도당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로 역사 수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교과서 논란의 본질과 검정교과서의 장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6. 주목할 것은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있는 현장 교사들의 56.3%가 국정 교과서보다는 검정 교과서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검정교과서 제도가 자리잡은 고등학교의 경우 66.4%의 교사가 검정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는 역사교사가 아닌 다른 과목 교사들(학교별 역사교사 2명. 다른 과목 교사 8명)이 대거 참여했음을 감안하다면, 국정 교과서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거부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7. 교육부와 새누리당이『조선일보』를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편법으로 발표한 의도는 분명하다. 편향적인 보수언론의 왜곡된 해석을 빌미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동력을 얻으려고 했다면 그러한 꼼수는 분명히 실패했다고 우리는 단언한다. 늦었지만 교육부는 여론 조사 결과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북한과 베트남에서만 운영 중인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멈추어야 한다.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왜곡과 독도 도발의 실상을 자라나는 2세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도 국정 교과서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계와 역사교육계, 그리고 관련 시민사회의 건전한 비판을 때지난 색깔론으로 매도하고 국정화를 밀어붙인다면 박근혜 정부도 아베 정부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끝>
2015년 4월 9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공동대표: 변성호(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정동익(사월혁명회의장)
최은순(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
한상균(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