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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나는 박 대통령이 더 무섭다

김순덕 논설실장

입력 2015-09-21 03:00:00 수정 2015-09-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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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했던 先代 정치비전… 결국 실현시킨 일본의 아베
인사·위기관리·경제부터 살리기… 실패로 배운 교훈이 리더십 비결
대통령 경쟁자가 김무성인가…‘협량의 정치’ 오해 벗으려면
윤상현 정무특보 삭탈관직하라
 

73763614.1.jpg김순덕 논설실장
2015년 9월 19일 오전 2시 18분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 일본 참의원에서 집단적 자위권 법제화 등 안보법안이 통과되기까지 무박 4일간, 내게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의사당 내 몸싸움도,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도 아닌 아베 신조 총리의 책 보는 모습이었다. 당신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모든 것은 되게 돼 있고, 나는 내 일을 했다는 무심의 경지 같았다.

‘아베의 유신’이라 함 직한 일본의 재무장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도 중요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끝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관철해낸 아베라는 리더를 둔 일본의 정체였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古事)가 지금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아베 리더십의 비밀은 더 궁금했다.  

역사드라마를 작정해도 이런 운명의 장난을 만나기 어려울 만큼 아베와 박근혜 대통령은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연배에다 비슷한 시기에 취임했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아버지에게 제왕학을 배웠으며, 권력의 한복판에서 한 차례씩 쓰라린 시련을 겪었다.

과거를 돌아보면 누가 더 힘들었을지 가리기도 어렵다. 일본식 영어로 ‘사라브렛도(thoroughbred·순혈종마)’라 불리던 아베는 2006년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 때부터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5년 내 개헌”을 외쳤지만 1년도 안 돼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했다. 박 대통령이 정계에 나오기 전 18년, 그리고 2007년 대선 후보경선 패배 뒤의 아픔도 그 못지않았을 것이다.  

기능성 위장장애라는 설사병 핑계를 대고 366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던 아베는 그럼에도 2012년 11월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국에 가서 “일본이 돌아왔다”고 외친 것도 빈말이 아니었다. 아베노믹스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개혁이 확실히 안 된 상태이긴 해도 일단 기업 수익이 투자 확대, 임금 인상, 일자리로 이어지면서 일본에 활기가 돌아왔다. 그 힘으로 아베는 ‘전후(戰後) 레짐에서의 탈각’이라는 자신의 뜻을 마침내 실현시킨 거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라는 ‘핏줄’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베 1기의 실패가 입증한다.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유전적 자산도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유추가 나오게 된다.  

아베 2기 (지금까지의) 성공은 바로 그 실패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었기에 가능했다. 인사, 위기관리, 그리고 일의 우선순위를 1기와 딴판으로 한 것이다. 아베는 측근 대신 유능한 인재를, 위기 때 침묵하는 대신 즉각 반응을, 그리고 경제 살리기부터 해냄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본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아베 신조가 누구냐’를 주제로 지난 봄 미국외교협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즈카 게이코 요미우리신문 워싱턴지국장도 “아베노믹스는 결국 아베의 이데올로기 실현을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베보다 짧지만 아직 2년 5개월이나 남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비전이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취임사를 다시 보니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이 국정 목표인데 불행히도 성과를 댈 수가 없다. 

아베와 달리 박 대통령이 인사, 위기관리에서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는 건 국민적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작년에 튀어나온 ‘통일 대박’이나 이달에 새로 나온 ‘통일로 북핵 해결’ 같은 비전도 당장 취직자리가 절실한 젊은 세대한테는 너무나 공허하다.

무엇보다 알 수 없는 건 과거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반대 토론에서 보여주듯, 박 대통령한테는 뭐든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적 자본이 충분한데도 안 쓴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대통령을 큰누나라고 부른다는 정무특보 윤상현 의원 같은 재방(在傍·입에 발린 말로 아부하는 측근)이 당내 권력투쟁에 불을 질러 노동개혁에 써야 할 힘을 분산시키는데도 눈감아주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경쟁자는 김무성이나 유승민이 아니다. 아베 같은 강대국 지도자여야 한다. 동북아 쓰나미를 타고 집요하게 뜻을 이루는 아베보다 한가롭게 ‘배신의 정치’ 심판에 골몰하는 대통령이 나는 더 무섭다. 윤 특보를 삭탈관직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협량의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지 모른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
    다산제자 2015.09.22 07:05
    `협량의 정치` - 속좁은 인품이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거대몸체의 옆구리에서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 앞서 이명박전대통령이 4대강사업 등 무리한 국책사업으로 국가부채만 가중시키고, 아파트전세금이 건물가격을 상회한다는 씁쓸한 보도처럼 기형적 경제상황에서, 자원외교에 실패한 전직장관을 경제부총리로 기용하여 가계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한 현실에서 민초들은 한숨만 내뿜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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