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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생각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칠순 할머니가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깨친 뒤 간판을 읽고 은행을 다니고, 자식들의 편지를 읽고 일기를 쓴다. 새롭게 보이는 세상에 감격한 나머지 쏟는 그분들의 눈물을 보고, 교육이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유란 것을 절감한다. 보통 교육이란 명사가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지 않았다. 곧 전근대사회에서는 극소수 사족 남성만이 선생님 앞에서 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문맹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교과서 지식, 어느새 내 머릿속에 굳어

  모든 사람이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은 국민국가 성립 이후다. 제도화된 의무교육이란 것이 생긴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말하자면, 중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이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기에 고등학교도 사실상 의무교육인 셈이다. 의무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가 교육을 강제한다는 문제가 있다. 요컨대 의무교육은 국가권력의 강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학교에 다니지 않을 자유가 없다.

  교육의 강제성은 교과목과 교과서에서 가장 명료하게 드러난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은 학생과 학부모의 사전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다. 그 누구도 교과목이 왜 국·영·수와 과학·사회·역사·지리·음악·체육·미술 등으로 구성되었는지, 배우는 나와 나의 부모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또 교과서들이 왜 그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도 말해 주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된다. 나의 대뇌는 오직 학교와 교사, 교과서가 주입하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저장소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12년은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다. 교실에 사람을 가두어 두고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일방적으로 뇌에 지식을 주입하고, 시험을 보아 결과를 수시로 확인한다. 수없는 확인 끝에 최종적으로 ‘수능’이란 전국규모의 테스트를 거쳐 개인의 카스트를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피교육자는 자신의 대뇌에 꽂히는 지식이 달아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이 과정을 거쳐 교과서의 지식이 끊임없이 쌓이고 배이면 말랑말랑하던 머리는 딱딱하게 굳는다.

  한편 교실 속에 갇혀 있는 그 세월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교과서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관심 밖의 사물이 된다. 집 안을 뒹굴다 어느 결에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과서는 완전히 잊힌 것인가. 그것은 그냥 털어버리면 후두둑 떨어져 나가는 그저 그렇고 그런 지식의 덩어리였던 것일까? 아니다. 교과서를 거들떠보지 않아도, 분리수거함에 넣어도, 헌책방에 팔아버려도, 그것의 내용은 이미 나의 대뇌에 쌓이고 배여 들었다. 딱딱해진 나의 뇌는 나의 굳은 생각이 되었다. 곧 ‘나 자신’이 된 것이다. 한 번 물든 무명천에서 물감이 쉽게 빠지지 않는 것처럼 그 생각들은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국민 머릿속에 도대체 무얼 심으려고?

  나는 기억이 없는 생명으로 태어났다. 나의 기억은 생후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나의 존재 이전의 한반도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 있을 수 없다. 내가 고조선과 고구려, 신라와 백제,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를 ‘우리’의 기억으로 믿는 것은, 학교에서 오랜 시간동안 그 기억을 나의 대뇌에 심었기 때문이다. 이 동일한 기억에 근거해 우리는 ‘동질적 민족’이라는 관념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내게 없었던 ‘우리’의 기억을 나의 대뇌 속에 심기 위해서 필요한 과목이 곧 국사라는 교과목인 것이다.

  국민국가에서 교육이 국가권력의 강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 권력을 장악한 개인 혹은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생각을 국민의 머릿속에 심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권력을 쥐고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어떤 개인과 세력은 과연 국민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심으려는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평등과 평화, 민주주의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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