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별명이 ‘어당팔’인 이유는...글 | 정장열 주간조선 부장대우
하지만 어당팔은 ‘진짜 전쟁’ 앞에서는 결국 허당임이 드러났다. 황우여 부총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가치관과 이념이 정면 충돌하는 현장에서 그는 다시 동네북이 되면서 벼랑 끝에 내몰렸다. 전쟁터를 벗어나려 허둥대지만 그의 애매모호한 처신과 화법은 기회주의와 보신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미꾸라지’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가해질 정도다. 그는 여당 내에서조차 자신에 대한 경질론이 대두되자 그제서야 언론 앞에 나서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책임진 주무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진짜 전쟁’ 앞에서 허당임이 드러나 역사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수장이나 다름없는 황우여 경질론이 여당 내에서 제기된 것은 황우여 장관의 책임 방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황우여 경질론의 포문은 친박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김 의원은 지난 10월 26일 열린 친박계 의원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교육부의 앞으로 대응 방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며 “처음에 올바른 교과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명제로 본질적 문제를 앞에 내걸고 방법론적으로 검인정 강화냐, 국정화냐로 갔어야 한다. 이후 검인정 강화는 좌파의 카르텔 때문에 어려우니 국정화로 가야 한다는 형태로 진행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교육부가 첫 대응을 잘못했으니 장관을 경질해 갈아 치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의원은 10월 2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로 가야 하는 당위성과, 좌파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역사학계 상황, 이런 부분들을 국민한테 제대로 알렸어야 했다”면서 “처음에 사학교수들이 연쇄적인 집필거부를 했을 때 단호하고 정확하게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질론에 대해서는 김무성 대표도 “그런 주장이 나올 만하지 않느냐”고 말해 무게를 실었고, 새누리당 상당수 의원들이 경질론에 동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구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국정화를 당내에서 충분한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와 별개로 교육부의 한심한 대응을 보면 화가 난다. 그동안 당이 역사 교과서 문제로 숱한 회의를 하는데도 교육부에서 제대로 된 자료 하나 보내오지 않아 당에서 온갖 교과서 갖다 놓고 자료 만드느라 무지 고생했다. 이런 무사안일 복지부동이 다 황 장관한테서 비롯된 것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야당 나름의 이유로 경질론에 가세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10월 2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는 황우여 부총리가 ‘아직 검정인지 국정인지 정해진 게 없다’고 답변했는데, 교육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국정화 태스크포스(TF)가 10월 5일부터 운영됐다고 한다”며 명백한 위증을 이유로 황우여 책임론을 언급했다. 지난 10월 25일 밤 국회 교문위 소속 야당의원들은 서울 종로 국립국제교육원에 위치한 교육부 역사교과서TF팀을 ‘비선조직’이라고 주장하며 기습 방문해 결국 경찰과 대치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역구까지 사면초가의 상황 여야 모두 황우여 부총리의 경질을 요구하는 사면초가 상황은 황 부총리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신의 지역구(인천 연수구)에서도 벌어졌다. 내년 4월 총선 출마가 점쳐지는 지역구 내에서 보수 진보 단체들 모두가 국정 교과서 이슈를 문제삼아 황우여를 겨냥하고 있다. 보수단체는 국정 교과서를 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느냐는 이유로, 진보단체는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인다는 이유로 내년 총선 때 황우여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당장은 진보단체의 목소리가 더 거세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인천지역 60개 단체는 지난 10월 20일 인천 연수구 옥련동 황우여 국회의원 지역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강행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황우여 부총리가 낙선운동 대상 1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은 사실 황우여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교과서 문제에 대해 사실상 ‘결단’을 내린 후에도 임명권자의 의중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며 심각한 상황을 애써 희석시키려 했다. 지난 10월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한 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국정 교과서 발행을 “영원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바람직한 것은 자유발행제”라고 말했다. 자유발행제는 현행 검인정 체제보다 더 통제가 없는 교과서 발행 방식이다. 이 프로그램을 봤다는 한 대학교수는 “황 장관의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 국정 교과서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서 이 사안의 당사자가, 그것도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황 부총리는 이밖에도 국정화와 관련해 “과격한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등 한가한 얘기를 했다. 이런 발언을 겨냥해 언론인 류근일씨는 지난 10월 22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황우여·김정배·김상율… 전쟁 장난치냐?’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올바른 국사 교과서 편찬 방침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장본인들은 교육부 장관, 국사편찬위원장, 청와대 교문수석”이라며 “그런데 이들이 영 ‘돌격 앞으로’는 하지 않은 채 엉뚱한 소리나 지껄이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궁리나 하고 있는 것 같아 쯧쯧쯧 소리가 절로 난다”고 비판했다. 황우여 부총리는 말뿐이 아니라 행동도 모호했다. 국정화에 대한 거센 반발에 가장 앞장서 대응해야 할 사람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거나 수동적인 방어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국정화 당위성을 뒷받침할 자료도 내놓지 않았고 여론 조성을 위해 야권이나 학계 등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이른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비밀 TF’ 논란이 터진 후에도 황 부총리는 정부 세종청사에만 주로 머물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비선조직’ 논란으로 불에 기름을 부은 듯했던 정치권 일각에서 잠시 ‘황 부총리가 잠적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황 장관은 여권 내에서조차 자신에 대한 경질론이 확산되고 나서야 지난 10월 27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교육부에 대한 채찍, 또 장관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을 잘 안다”며 “무겁게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황 부총리는 10월 2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집 자체가 기울어져 있으면 지붕이나 벽을 조금 손본다고 튼튼한 집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필요성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부총리는 11월 5일 국정 교과서 확정 고시 이후로 예상되는 2차 개각 때 당으로 복귀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사실 작년 8월 교육부총리에 임명된 황우여 장관 입장에서는 도저히 피해 가기 힘들고, 확실히 한쪽 편에 서야만 하는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무척이나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육부 수장으로서 그의 지난 14개월간을 돌이켜보면 비단 국정화 이슈뿐 아니라 다른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회피하거나, 뭉개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취임 이후 교육부 최대 당면 과제였던 대학 구조 조정작업도 황우여 스타일을 비판하는 하나의 이유로 거론된다. 부실 대학을 솎아내 퇴출시키는 게 아니라 모든 대학의 정원을 골고루 줄이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대학 내에서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서울 명문 사립대의 한 교수는 “대학 구조조정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많다. 누구에게도 욕을 먹지 않겠다는 황우여 스타일대로 한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이 불만인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회피하거나 뭉개는 황우여 스타일 장기간 총장 공백 사태를 빚고 있는 대학 총장 임명건도 마찬가지다. 현재 총장이 7개월째 공석인 전주교육대를 비롯해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 경북대 등이 장기간 총장 공백 사태를 겪고 있고 이로 인해 “교육부의 대학 길들이기” “교육부의 윗선 눈치보기” 등의 온갖 억측이 돌고 있지만 교육부는 별다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할 일을 미루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총장 공백 사태를 맞고 있는 경북대의 경우 김사열 총장 후보자의 임용제청을 교육부가 계속 거부하자 교육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사태도 결국 민감한 현안은 일단 뒤로 미루는 황우여 스타일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황우여 부총리의 태만과 책임회피는 그가 자리를 맡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본인 스스로 취임 초부터 ‘장관직에 별다른 뜻이 없다’ ‘나는 어차피 정치권으로 돌아갈 사람’이라는 식의 발언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과학단체 임원을 지낸 대학교수는 자신이 황우여 부총리 취임 초기 직접 겪은 일을 이렇게 전했다. “황 부총리 취임 초 우리 단체 임원진이 면담을 요구해서 서울 여의도 교육부 장관 별도 집무실에서 면담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문이과 통폐합 등 과학계의 현안이 많았다.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식 요청을 해서 교육부 담당 과장과 함께 만난 자리였는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황 부총리에게 우리의 요구사항과 입장을 전하는데, 우리가 제출한 자료를 넘기던 부총리가 ‘저한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저의 임기는 1년입니다’라고 했다. 저 양반이 저 자리에 왜 있나 싶어 말문이 막혔다.” 이런 발언에서 보듯 그의 책임회피가 결국은 장관으로서의 철학이나 사명감에 앞서는 ‘정치인 황우여’의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다는 시각도 많다. 이번 국정화 이슈에 대해 그가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것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1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천·경기 지역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3%로 반대(46%)가 더 많았다. 그가 교육부총리로 있으면서 지역구를 챙기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것도 이런 시각을 부채질한다. 황 부총리는 작년 11월 교육부의 요직 중 하나인 교육정책실장 자리에 김동원 인천 계산여고 교장을 임명해 빈축을 샀다. 특히 임명하는 날이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어수선한 때여서 ‘꼼수 인사’라는 비판도 들었다. 자기 지역 기반인 인천 출신 인사를 수능시험에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을 때 요직에 앉혔다는 비판이었다. 심지어 그가 대학 구조조정을 ‘골고루 피해 보는 방식’으로 해결한 것도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구조조정 대상 대학을 의식한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돌기도 했다. 장관 자리에서도 지역구 챙기기? 장관 업무보다는 정치권을 의식하는 행보 탓인지 그는 교육부 내에서도 별로 인기가 없는 편에 속한다. 그가 부임할 때만 해도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통하는 실세급이었다. 특히 그는 교육부 장관직을 부총리로 격상시키면서 부임했다. 한 교육부 간부의 솔직한 토로다. “공무원들이 실세 장관에게 바라는 게 뭐가 있겠느냐. 자리 늘려주는 게 최고 아니냐. 황 부총리가 올 때 부총리로 격상되면서 다른 사회부처들을 통괄하는 조직이 교육부 안에 새로 생겨야 했다. 김대중 정권 당시에는 교육부총리가 신설되면서 인적자원정책국 등 자리가 50개 이상 늘었다. 이번에도 한참 기대를 했는데 고작 10개 자리가 느는 데 그쳤다. 황 부총리가 일을 벌이기 귀찮다는 듯이 ‘그 정도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해 실망했다.” 판사 출신인 황 부총리는 5선 국회의원이다. 내년 총선에 출마해 다시 당선되면 6선 고지를 밟는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주역으로서 그의 다음 꿈은 대화와 타협을 이끄는 국회의장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에도 19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직을 원했지만 그는 본의와 다르게 교육부 수장이라는 자리에 ‘불시착’했다. 그가 정치권에 복귀하면 다시 어당팔로 부활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이번에 무소신 무책임의 허당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덧씌워져 버린 느낌이다. 출처 | 주간조선 23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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