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박근혜만이 혁명가인 세상
다가오는 파국. 한국사회가 각종 이슈에 대한 찬반논쟁이 큰 사회라고? 하지만 이 어두운 전망에 대해서는 전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신기한 나라다. ‘닥터 둠’이나 동의할 법한 이 가설은 다시 다음의 몇 가지 소가설로 구성된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구한말이다. 제도권 정치는 파국의 원인이며 무능의 극치이다. 2016~2017년 경제위기가 예견된다. 디스토피아가 다가오고 있다. ![]() 최근 사석에서 만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사람들에게서도 거의 만장일치의 합의를 확인하곤 한다. 사실 난 스스로의 비관주의를 믿지 않는다. 과거에 운동권 시절 대한민국이 종속이 심화돼 남미형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 파국론자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난 한국사회의 잠재성을 과소평가한 과거의 치명적 오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퍼즐은 다들 구한말을 이야기하는데 카페에서의 비분강개가 끝나고 나면 대부분 너무도 평온하고 안락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인식이 그 정도로 심각하면 태도와 행보는 당연히 그에 비례해야 하지 않나하는 의문이 들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듣기는 어렵다. 사실 글로벌하게 보면 닥터 둠들은 비전의 옳음을 떠나서 그에 조응하는 실천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바처럼 6번째 지구 대멸종을 예견하는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전 재산을 걸고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심각하게 추진한다. 혹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어두운 미래를 우려하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빅데이터와 결합된 계획식 사회주의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 비례가 잘 맞아떨어지는 이는 존재한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는 좌파 출신인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지금 거의 유일한 혁명가이다. 단 대한민국의 궤도를 세계시민 국가로의 미래가 아니라 국가주의의 어두운 과거로 향하게 하는 복고적 혁명가이다. 마치 미국의 섬뜩한 네오콘들이 소비에트보다 더 고대적인 미국을 추구하면서 역사전쟁, 문화 헤게모니 투쟁을 펼친 양태가 정확히 현 대통령에게서 확인된다. 심지어 ‘정상적’ 시장질서를 위해 과도기적 독재로 국정교과서를 발행해야 한다는 태도는 파시즘 이론가인 카를 슈미트가 환생한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들에게 지금은 ‘예외 상황’이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이기에 자유민주주의 절차나 방식은 부차적이다. 대통령의 급진적 태도와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은 아직은 꼭 ‘카페 혁명가’들 같다. 한국의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은 비분강개는 하지만 아직은 정치질서의 큰 재편의 움직임으로 성큼발을 내디디지 않는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새정치민주연합은 그저 평범한 총선 전략을 짜면서 이후 다수당으로서 대체 입법을 말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이번에는 총선, 대선에서 예외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누가 믿을까? 지금 정도의 태도로 이후 야권의 후보가 과연 대선 시기에 등장할 수도 있는 ‘한국판 아이젠하워’에게 이길 수 있을까? 진보진영은 그저 통합하면 강력한 영국 노동당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글쎄 난 대단히 회의적이다. 사실 다들 너무 점잖아졌고 나도 그러하다. 마치 미국에서 68혁명의 피로감이 만연한 후 한동안 뉴에이지 바람이 분 것처럼 건강과 힐링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모두들 계속 크고 작은 싸움에서 지는 과정에서 무력감과 내면에 베인 상처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SNS 만능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작용일까? 다들 크고 강렬한 그림보다 소심한 데생만 반복하고 있다. 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산뜻한 해법이 나에게도 없다. 다만 지금 낡은 것은 끈질기게 잔존하고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는 과도기에 모든 인식과 실천은 최소한 두 가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어렴풋한 방향 정도만 있다. 하나는 직전 과거의 인식 및 태도와 급진적 단절을 하고 있는가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계획적인 작은 실험을 성공시키며 큰 균열을 만들어가는가이다. 과거로 끈질기게 돌아가려는 퇴행적 세력에 맞서려면 그 이상의 결기와 상상력만이 대한민국을 미래로 한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지금은 보수 대 진보의 전쟁이 아니다. 과거 대 미래, 누가 더 대담하게 상상하고 누가 더 치열한가의 싸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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