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안철수가 탈당한다고 할 때 나는 야권의 공멸을 우려하며 그를 비판했다. 그리고 지난 총선 당시, 3당 구도는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수도권에서는 야권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이 두 가지 얘기는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야권은 공멸하지 않았고 반대로 여소야대가 만들어졌다. 1번도 싫고 2번도 싫은 사람들에게 3번은 의미있는 대안으로 등장했다. 나의 얘기가 틀리고 안철수의 얘기가 맞아버렸다.
우리가 예언가가 되려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구의 얘기가 맞았고 틀렸냐에 매달릴 일은 아니다. 다만 나의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의 생각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었던가를 돌아보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말로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자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 관성적 사고에 갇혀 있던 자신을 성찰한다. 우리의 화석화된 사고를 넘어 요동쳤던 민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눈앞에 나타난 현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여전히 많이 보게 된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호남의 선택을 향해 ‘호남 자민련’을 만들려는 지역주의라고 비난한다. 심지어 ‘5·18 묘역에 콘크리트를 부어버려라’는 막말까지 SNS에 돌아다닌다. 어떻게든 정권교체가 가능한 길을 찾아보려는 호남의 전략적 고민은 안중에도 없이, 안철수와 제3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그런 모욕을 가한다. 그런가 하면 다시 새로운 공격의 무기가 만들어진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결국 새누리당과 합칠 야합세력이라는 낙인이다. 논리적 설명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이 주장은 국민의당을 야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이들에게는 4·13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 같은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눌 때, 안철수 세력은 악에 속하고 그들은 심판받아야 할 나쁜 정치인이라는 신념은 더욱 공고해져 간다. 정치학자 파커 파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과 모순되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옹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이들 앞에서 제3당도 키워야 한다고 대답한 총선 민의를 말하면, 그에 귀를 열기는커녕 자신들의 변함없는 이분법적 신념을 한층 굳힐 뿐이다.
안철수는 정말 그렇게까지도 증오받고 심판받아야 할 정치인이었던가. 물론 그는 정치에 뛰어든 이래 여러 미숙함도 드러냈고 많은 실망도 안겨주었다.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되었던 그 엄청났던 기대를 생각하면 그동안의 부족함은 많은 비판을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그는 정치인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갖 비난과 조롱 속에서도, 3당 체제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해 보였다. 제1야당에서 혼자 뛰쳐나와 이런 성과를 만들어낸 것은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고 하수(下手) 대하듯이 바라볼 정치인이 더 이상 아니다. 물론 이번에 그가 맞았다고 다음에도 그가 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이제는 서로가 인정하고 앞으로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재평가하려는 태도가 민심에 대한 예의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즐겨 썼던 말이다. 이 말을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적용할 줄 아는 그 지지자들을 보고 싶다. 서로의 기회를 존중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면 되는 일이다. 안철수는 ‘괴물’도 아니고 ‘반역자’도 아니요, 그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정치인일 뿐이다. 혹여 그의 파산을 빌다가 오히려 내 마음이 파산을 맞은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
출처: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10&oid=033&aid=0000032818